[바둑] '제11회 삼성화재배 세계 바둑 오픈' 정처 없이 쫓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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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제11회 삼성화재배 세계 바둑 오픈

<결승 2국>

○ . 이창호 9단 ● . 창하오 9단

제5보(55~67)=점심시간(12시) 직전 중국 측 검토진은 중앙 백대마의 목을 조르는 통렬한 급소 한 방을 찾아내고 더욱 환한 얼굴이 됐다. 바로 55의 옆구리 붙임인데 조한승 9단도 "그 수가 아주 괴롭군요"라며 침울한 어조로 수긍했다. 곧 점심시간이 되었고 두 사람은 자리를 떴다. 문제의 급소 한 방이 텅 빈 대국장 주변을 저승사자처럼 떠돌며 음침한 미소를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오후 1시 대국이 재개되자 창하오 9단은 약속이나 한 듯 정확히 55 자리를 두드렸다.

'참고도' 백1로 나가는 것은 무리다. 흑2로 끊겨 백은 일순간에 지리멸렬이 된다. 이창호 9단은 부득이 56으로 후퇴했고 흑은 57로 기분 좋게 막아버린다. 56이 완전 공배라면 57은 중앙을 호령하며 흑을 살찌우는 두터운 한 수. 58로 기대며 벼랑 아래로 달아나고 있으나 주변 흑이 단단해 백대마의 걸음은 더디기만 하다.

얼굴에 홍조를 띤 이창호 9단이 뒷머리의 진땀을 수건으로 닦아내고 있다. 고전이다. 마치 귀신이 홀린 듯 정처 없이 쫓기고 있다. 이 9단이 초반부터 이처럼 고전하는 모습을 전엔 본 적이 없다.

창하오는 59로 슬쩍 그물을 친 뒤 61, 63으로 눈을 탈취한다. 그의 손속이 기계처럼 정확하다는 느낌이 든다. 정말 많이 변했구나, 창하오! 64로 호구를 쳐 힘겹게 탄력을 붙이려 하자 흑은 '안 된다'며 다시 65, 67로 숨통을 바짝 조여온다. A로 두면 백 9점이 잡힌다. 백은 이 모두를 살려나갈 수 있을까.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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