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실패 한국인 노숙자 늘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2면

중국에서 무역업체를 운영하던 A씨(40대 남자)는 2005년 부도가 나자 베이징(北京) 등을 전전하는 노숙자 신세로 전락했다.

가족과 연락을 끊고 지내던 그는 최근 주중 한국대사관의 도움으로 어렵게 귀국길에 올랐다.

개인 사업을 하던 B씨(50대 남자)도 비슷한 사정으로 중국에서 노숙 생활을 하다 최근 주민의 신고로 공안에 신병이 넘겨졌다. 그는 현재 베이징시 차오양(朝陽)구의 행려자 임시 보호소에 머물고 있다.

이곳에는 그와 비슷한 처지의 한국인 4~5명이 함께 체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주중 한국대사관 총영사관 관계자는 12일 "사업 실패 등으로 중국을 떠도는 한국인 '국제 노숙자'가 지금까지 파악된 것만 해도 50여 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가족과 연락이 된 노숙자는 가족이 비용을 부담하고, 사정이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대사관이 교통편을 알선해 현재까지 10명 정도를 귀국시켰다"고 말했다.

그동안 경제적 이유로 귀국하지 못해 해외를 떠도는 한국인은 주로 동남아에 집중됐으나 중국에서 한국인 노숙자가 파악된 것은 처음이다.

총영사관에 따르면 이들 노숙자는 모두 40~50대 남자로 대부분 사업 실패 후유증으로 귀국을 포기하고 노숙을 해 온 것으로 파악됐다. 대사관 관계자는 "국내에서 사업에 실패한 뒤 남은 자금을 털어 중국에 건너와 재기를 노렸으나 다시 부도를 맞아 자신감을 완전히 잃어버린 사람도 있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최근 들어 한국인 노숙자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어 대사관 차원에서 정확한 실태 파악과 대책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중국 정부가 최근 영세 외국인 기업에 대한 혜택을 축소하고 규제를 강화하면서 사업 여건이 악화하고 있어 유사 사례가 늘어날 것으로 우려된다. 탈북자 처리에 고심해 온 주중 대사관으로선 한국인 노숙자 문제가 새로운 현안으로 등장한 셈이다.

베이징=장세정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