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추진 곳곳에 구멍/「선거병 현상」 심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휘발유값만 올린 유가자율화/숫자에 매달리는 물가·통화관리/이익단체 압력에 정책변질 일쑤/“자율화는 경쟁촉진” 안목부족/전문가
정부가 추진하는 주요경제정책들이 선거를 의식한 정부의 엉거주춤한 자세로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현상이 심각해지고 있다. 개각과 선거를 앞두고 주요정책 추진에 급브레이크가 자주 걸린다. 지금까지 한국현실에 맞는 좋은 정책이라고 선전해 왔던 것들이 이제와서는 선거득표에 도움될 것이 없다는 나름대로의 분석에 따라 지지부진 상태에 빠져 있다.<관계기사 6면>
결국 기름값만 올린 꼴이 된 「유가자율화」가 그렇고 시행을 코앞에 두고 있으면서도 아직껏 구체적인 모습하나 그려내지 못하고 있는 「금리자유화」도 그렇고 원칙에는 공감하면서도 누구하나 앞서 나서려하지 않는 「아파트가격 자율화」도 마찬가지다.
또 노동법 개정이나 생수시판 허용여부를 둘러싸고 정부는 조정자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하고 「보류」로 미뤄버렸다.
숫자가 갖는 본질적인 의미보다는 숫자자체에 매달리는 물가·통화관리나 세계적 추세는 어찌됐든 다양한 논의조차 봉쇄되고 「개방불가」만 외치는 UR협상 자세도 하나 나을 것이 없다.
농업구조조정의 근본대책으로 추진돼온 농업진흥권역 설정은 이로 인한 이해갈등을 조정하는데 실패,성사가능성이 점차 희박해지고 사회간접자본 투자의 재원확보나 민자유치방안은 세부담 증가와 정경유착의 따가운 시선속에 무엇하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책임져야할 자리에서 책임지려는 사람이 없고 어렵고 골치아픈 문제는 피해가려는 보신술만 횡행하며 가닥을 잡아 풀어보려는 노력은 찾아보기 어렵다.
등을 떼밀리다시피해 내놓은 정책들이 이익단체와 정치권의 압력으로 변질되기 일쑤다.
정책당국도 뿌리깊은 영역주의와 인·허가의 달콤한 마력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휘발유값만 올려놓은 유가자유화는 그 단적인 예다. 가격과 함께 당연히 자율화됐어야할 생산·수입·유통부문이 비경쟁 지대로 남겨짐으로써 유가자율화는 「경쟁촉진」이라는 본래의 도를 살리기는 커녕 독과점의 폐해만 증폭시켰다.
내년도 3∼4차례의 선거를 앞두고 이같은 현상은 더욱 심해졌고 선거철이 다가올수록 그 정도는 더 커질 것이 분명하다.
국가경제라는 큰 틀에서 방향을 잡고 최선의 조합을 찾는게 정부의 일이다.
그런데 발표되는 정책마다 최선의 조합을 찾아내기는 커녕 비난과 압력속에서 휘몰리다 민주화과정에서 의사결정의 어려움을 핑계로 유야무야되거나 잔뜩 뒤틀린채 일을 벌여 정책효과가 아닌 부작용만 낳기 일쑤다.
김태동 교수(성대·경제학)는 『경제 각 부문의 자율화가 지연되는 것은 각 경제집단의 이해가 얽히고 대기업·토지소유자 등 기득권층의 거센 반발에도 원인이 있지만 무엇보다 각 경제부처가 제할 일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행정규제완화위원회에 민간자문역으로 참여하고 있는 이모박사는 『자율화에 대한 정부의 기본시각이 정립돼 있지 않은데다 정부이권·업계이권·국민의 몰이해가 얽혀 실질적 자유화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