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뜰가게」 인기/“나눠쓰는 지혜를 체험했어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경실련 개장에 시민들 크게 호응/방콕시장 잠롱부인 사례에 착안/손님 하루 천여명씩 북적/「과소비」 바로잡는 계기로
『당신에게는 불필요한 물건이지만 가난한 이웃에게 주어지면 보물이 됩니다.』
경제정의실천 시민연합(경실련)이 지난달 19일 서울 약수동에 국내 처음으로 개설한 상설 「알뜰가게」가 과소비 세태속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대지 1백평·건평 40평의 한옥에 자리잡은 「알뜰가게」앞에는 1일 오후에도 1백여명의 이용객이 차례를 기다리며 줄서있었다.
대부분이 주부인 이들은 20명 단위로 입장하기가 무섭게 기증된 헌 생필품이 가득찬 진열대를 꼼꼼하게 훑어내려갔다.
『막노동을 하는 남편이 어쩌다 집안 경조사가 있어도 마땅히 입을 옷이 없어 안타까웠는데 마침 적당한 옷을 발견해 너무기뻐요.』
박금자씨(40·여·서울 신림동)는 새것과 크게 다를게 없는 감색 양복 한벌을 단돈 3천원에 산뒤 흡족해했다.
경기도 성남시에서 이웃주민들과 함께 왔다는 이복례씨(37·여)도 1백원짜리 어린이장난감,2백원짜리 T셔츠,1천원짜리 점퍼를 골라 비닐백에 담았다.
『여기 오기전까지만 해도 남이 쓰던 물건을 쓴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막상 와보니 실용적일뿐만 아니라 물건을 맡긴 사람의 인정이 느껴져요.』
1인당 쇼핑 제한시간인 10분이 지나 밖으로 나서는 이씨의 표정은 뿌듯했다.
경실련이 「알뜰가게」를 상설키로 한 것은 지난해 10월 잠롱 방콕시장이 방문했을때 그로부터 자신의 부인 시리락 여사가 「퉁」이라는 알뜰시장을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은 것이 결정적인 계기였다.
『태국 현지에 직접 가보니 시리락 여사가 직접 재봉틀을 돌려가며 헌옷을 수선하고 세탁해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료로 나눠주고 잠롱 시장은 기증받은 물건을 직접 트럭으로 운반하더군요.』
알뜰가게 운영위원장 기소영씨(47·여)는 당시 큰 충격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이곳에 나온 2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은 대부분 교수·의사 등의 부인들로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사람들.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열리는 알뜰가게의 고객은 대부분 서울 변두리나 성남 등의 달동네 서민들로 하루 평균 1천여명이 다녀갔다.
알뜰가게는 앞으로 재단사와 가전제품 수리공을 두고 헌 물건을 더욱 새것에 가깝게 만드는 등 더욱 체계적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기씨는 『이 사업은 과소비시대의 국민절약운동이라는 점에서도 보람이 있지만 있는자와 없는자가 서로 가슴을 열고 체온을 나누는 장을 마련한다는데 각별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이하경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