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질서 속의 중동 평화회담(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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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30일 시작되는 중동 평화회담의 전망은 불투명하지만 당장 나타날 결과에 관계없이 역사적인 의미를 지닌다.
적대관계에 있던 지역분쟁의 모든 당사자들이 처음으로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하고 협상테이블에 앉게 된 사실이 그러한 평가의 첫번째 근거가 된다. 그 두번째 근거는 냉전시대를 청산하는 또 하나의 국제적 평화노력이 시도되고 있다는 점이다.
중동문제는 반세기 가까이 가장 위험한 지역분쟁으로서 평화를 위협해 왔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생존권문제,아랍과 유대민족의 인종적·종교적 대립이 뒤얽힌 지역분쟁에 미소의 대리전 양상까지 가미된 복잡한 분쟁이었다.
얼마전까지 이 지역정세를 악화시켜왔던 가장 중요한 요인들이 제거된 전혀 새로운 상황에서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으려는 첫번째 노력이 이번의 중동 평화회담이다.
그러한 변화의 가장 두드러진 상황은 미국과 소련이 아랍과 이스라엘중 어느 한편을 일방적으로 두둔하기 보다는 비교적 중립적인 입장에서 문제해결에 접근하고 있다든 점이다.
미국이 점령지역에 정착촌 건설을 강행하려는 이스라엘정책에 제동을 걸고 전혀 상대하지 않으려던 PLO의 존재를 어느정도 인정하면서 협상을 주선하고 있는데서 그러한 변화를 읽을 수 있다.
아랍세계에 군사원조를 제공하며 이스라엘에 적대적이던 소련이 얼마전 이스라엘과 수교하면서 이번 회담성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한 것 역시 중동분쟁을 풀어나가는데 새로운 긍정적 요소로 기대된다.
적어도 분쟁의 악순환을 부추겼던 배후세력이 물러남으로써 그만큼 평화해결 노력은 단순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당사자들의 이해가 이번 회담을 통해 어느정도 조정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스라엘은 점령지구의 정착촌 건설과 전략적 요충인 골란고원의 시리아반환문제로 압력을 받게 될 것이다.
반면 점령지역에서 새로운 독립국가를 모색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그러한 열망을 채우기 보다는 제한된 자치권을 획득하는 선에서 만족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강요받게 될지 모른다.
물론 이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아랍측의 새로운 강자로서 부상한 시리아가 골란고원의 반환요구를 굽히지 않을 것은 확실하므로 그럴 생각이 전혀 없는 이스라엘과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다는 것은 지금 단계에서는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문제 모두가 이번 중동회담을 통해 해결되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대화를 거부했던 당사자들이 다자간협상에 참여하고,또 개별적으로 토의할 기회를 가졌다는 것은 분명히 커다란 진전임에는 틀림없다.
서로가 자기네가 가진 평화안을 제시하고 상대방의 진의를 타진하고 절충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는데서 회담개최 사실 하나만으로도 마드리드회담은 역사적인 전기를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비록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한번 시작된 회담은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을 그만큼 넓혀 놓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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