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사원 구하는 미국 기업들 '헬리콥터 부모' 모셔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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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자녀를 우리 회사에 보내세요."

인재를 뽑으려는 미국 기업들이 정작 구직자 본인은 제쳐둔 채 자녀가 다 자란 뒤에도 주변을 맴돌면서 간섭하는 '헬리콥터 부모'들에게 구애의 손짓을 보내고 있다고 월스트리트 저널이 5일 보도했다. 의사결정을 혼자 하지 못하고 직장과 장래를 부모와 상의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난 현상을 역으로 이용한 것이다.

거대 금융기업인 메릴린치는 인턴 직원의 부모를 회사로 초청해 사무실에서 점심을 들며 회사생활에 대해 설명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대형 회계법인 언스트 앤드 영도 부모들을 위한 회사 정보 자료집을 만들었다. 이달부터 12개 학교에서 취업설명회를 하면서 이 자료집을 배포할 계획이다. 뮤추얼펀드 운용사인 뱅가드그룹은 부모에게 편지를 보내고 대학 인터넷 사이트의 학부모 게시판에 별도 광고를 하고 있다. 대형 회계법인 델로이트 앤드 터치도 비슷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미국 기업들이 부모 공략에 나선 배경에는 헬리콥터 부모들의 거센 치맛바람이 있다. 자신의 자녀를 뽑아 달라고 회사에 직접 부탁하거나 자녀의 연봉 협상에 나서는 부모도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런 부모는 기업의 채용 담당 부서를 직접 공략한다는 뜻에서 '가미카제 부모'로도 불린다. 실제로 지난해 메릴린치의 방문 프로그램에 참여한 토인 마페는 최근 대학 4학년인 딸 에니올라에게 메릴린치 입사를 적극적으로 권했다. 마페는 "딸이 늦게까지 일한 뒤 집에 오는 것이 걱정이었는데 회사 측이 출퇴근 서비스에 대해 설명해 줬다"며 "직원을 배려하는 회사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은행 3~4군데를 저울질하던 에니올라는 결국 메릴린치를 선택했다.

그러나 부모의 과도한 간섭은 자녀의 반발심을 불러올 수도 있다. 이 때문에 뱅가드그룹은 구직자에게 직장에 대한 정보를 나누고 싶은 사람이 있느냐고 먼저 묻는다. 채용 담당자 카렌 폭스는 "그들은 결국 정보를 부모들에게 보내 달라고 하겠지만 그래도 먼저 물어야 한다"며 "젊은 세대는 부모의 조언을 바라면서도 동시에 독립적인 어른으로 대접받길 원한다"고 말했다.

백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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