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신은 구두 너덜너덜 새벽까지 아르바이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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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장호는 6년 동안 구두 한 켤레를 굽만 갈아가면서 신을 정도로 검소했어요. 차도 20년 가까이 된 고물을 애지중지하며 타고 다녔죠. 생활이 너무 건실해 친구들 사이에서는 별명이 '목사님'이었어요. 아프가니스탄에 자원하면서 '돈을 모아 대학원 공부를 계속할 생각'이라고 말했지요."

4일(현지시간) 뉴욕 롱아일랜드 헴스테드에 있는 참사랑교회(담임목사 문영길) 예배당. 아프가니스탄에서 폭탄테러로 숨진 다산부대 고 윤장호(27) 하사의 친구들과 교인 100여 명이 추모 예배를 가졌다. 이 교회는 윤 하사가 1994년 조기유학을 위해 미국 땅을 밟은 직후인 중학교(우드미어 아카데미) 1학년 때부터 고교(휴렛고)를 졸업할 때까지 다녔다.

조기유학을 온 뒤 윤 하사와 친구로 지냈던 동갑내기 유한상(27)씨와 문지은(여.27)씨는 윤 하사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 듯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유씨는 "장호는 검소하고 자기관리가 철저한 착실한 친구였다"며 "장호가 똑같은 구두를 몇 년씩 신고 다닌다는 사실도 덕지덕지 붙인 구두굽을 보고야 알았다"고 말했다. 문씨는 "장호가 뉴욕에서 중.고교를 마친 뒤 인디애나에서 대학에 다닐 때에는 밤늦게까지 식당에서 웨이터로 일했다"며 "새벽 2시쯤 일을 마치고 집에 온 장호가 가끔 장거리 전화를 걸어와 2~3시간씩 통화한 적도 있었는데, 당시 '많이 외로운가 보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가 미국 생활 내내 친누나처럼 따랐던 김성희(30)씨도 "장호와 똑같이 94년 미국 땅을 밟아 우리의 싸이월드 일촌명이 '1994년'이었다"며 "교회에서는 주말마다 한글학교 교사로 일했고, 누가 도움을 청할 때 한번도 거절하는 적이 없을 만큼 남을 돕는 일에 발벗고 나섰다"고 전했다. 이어 "얼마 전까지도 e-메일을 주고받으면서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자고 했는데…"라며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뉴욕지사=안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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