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법개정 대전환 있어야 한다(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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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네차례의 큼직한 선거행사가 몰려있는 내년은 자칫하면 온 나라가 선거의 광풍속에서 기우뚱거릴지도 모른다는 걱정들이 국민들 사이에 널리 확산되고 있다.
이미 바닥이 드러날 정도로 심하게 소진된 경제적·사회적 기력의 한계를 생각할때 선거의 타락과 혼란에 대한 튼튼한 예방장치를 준비하지 않으면 큰 불행을 맞게 되리라는 걱정은 결코 엄살이나 기우가 아니다.
이 걱정을 덜어줄 수도 있는 가장 공식적인 제도적 조직인 정당의 대표들이 국회의원선거법과 정치자금법 협상을 벌이기 시작했다. 제발 내년부터는 근대화의 마지막 과제인 정치와 선거의 근대화가 실현되기를 바라는 희망과 기대로 인해 여야의 협상에 쏠리는 관심도 그만큼 깊어질 수 밖에 없다.
이런 기대에도 불구하고 선거풍토 개선과 공명선거의 의지보다 당이나 계파의 세확장에 연연하는 여야의 해묵은 작태에 한점의 변화도 없다는 것이 최종적으로 확인될경우 선거제도의 정비작업을 정치인들에게 더 이상 맡겨둘 수 없다는 공감대가 국민들 사이에 형성될 것은 정한 이치다.
우리는 그런 끔찍한 사태가 오지 않기를 바라면서 이번 협상을 통해 꼭 실현돼야 할 개선사항들,특히 경제적·사회적 불안을 줄이는데 필수적인 사항들을 강조하고자 한다.
그 첫째가 돈안드는 선거의 실천이다. 우리가 수십년간 보아왔고 개탄해마지 않았던 「돈으로 표사기」식의 선거운동은 어떤 일이 있어도 봉쇄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관행대로라면 선거 네번에 뿌려질 돈은 수조원을 헤아리게 한다. 더구나 부동산투기의 횡행으로 졸부양산의 경제구조하에서 비대해진 금력이 직접·간접으로 선거판에 동원되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검은 돈까지를 합친 금력에 기대어 의회로 진출한 국민의 대표들이 입만 열면 국민경제를 걱정하고 남의 부정을 질타하는 요지경정치를 가지고는 정치도,경제도 회생시킬 수가 없다.
선거때마다 기업이 울며 겨자먹기로 돈을 뜯기는 구습도 차제에 타파돼야 한다. 개표가 끝나기가 무섭게 통화당국의 여신억제,자금환수로 골탕을 먹어온 기업들은 내년에 네번이나 그런 일을 당해야 한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기가 질려 있다.
두번째로 유념해야 할 것은 선거운동 과열이 세의 과시를 겨냥한 물불 가리지 않는 인력동원을 초래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다. 농촌·도시를 통틀어 생산현장마다 일손이 모자라는 실정인데다 선거인력 동원이 근로분위기와 임금동향에 미칠 부작용까지를 감안할때 정치판이 생산부문으로부터 끌어다 쓸 인력은 극도로 제한돼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선거행사들이 가뜩이나 축제과잉의 사회에 또 한바탕의 잔치판을 벌여 소비를 부추기고 공짜를 찾는 대중심리를 자극하는 것을 막아야 할 것이다.
물론 이같은 선거풍토개선이 선거관련법의 개정으로만 달성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선거제도의 손질에 나서는 여야 대표들이 경제와 사회의 안정적 발전을 생각하는 안목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협상에 임하는 자세와 그 자세가 구체화시킬 법개정 내용은 판이하게 달라질 것이다. 모든 정치인들이 기득권 확보에 연연하지 않는 혁명적 발상으로 임해주길 간곡히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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