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센 우리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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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지난 8월22일부터 24일까지 제4회 국제 한국어 교육학회 심포지엄이 연세대 언어연구원에서 「2l세기를 향한 한국어교육」을 주제로 열렸다.
아침9시부터 오후5시30분까지 빡빡하게 짜여진 심포지엄은 한국어를 외국어로 가르치는 것을 염두에 두면서 생각해 보자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2개의 교실에서 동시에 세미나는 열렸다. 하고싶은 말을 가슴 가득히 품고 살던 사람들이 모처럼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 봇물처럼 토해내는 말들이 많았다. 자기 나름대로 연구해온 자료들을 들고 나와 발표하는 세계적인 석학들.
각기 다른 나라에서 살면서 「한국어」라는 공통의 과제를 놓고 애를 써온 사람들이 한데 모여 그들의 관심사를 이야기하는 동안 나는 묘한 감회에 사로잡혀 열이 오른 사람같이 들뜬 상태였다.
나라의 말이 말살 당하던 시절, 일본말이 나의 말인 줄 알고 자란 나는 아직도 일본어 읽기가 한국어 읽기보다 속도가 더 빠르다. 나라를 찾은 기쁨은 영어 배우기와 병행되었고, 영어를 제대로 못한다는 열등감은 그 이후 내 평생을 좌우하는 슬픈 사슬이 된다.
국어 선생이 되어 중·고등학교 학생들을 가르쳤지만 만족도는 크지 않았다. 모두가 잘 아는 국어를 가르친다는 것은 대학입학시험 준비를 시키는 일과 맞물려져 있었다.
뜻하지 않은 외국생활과 외국에서의 공부덕택으로 한국어선생으로 변신한 후 나는 한국어에 대한 투지로 해서 많은 괴로움을 맛본다.
내가 알고 있는 한국어를 외국인에게 제대로 가르칠 수 없는 슬픔. 가르칠수록 어려워지는 한국어. 과연 내가 한국어를 알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
이런 것들이 한데 어우러져 답답하던 터에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게 되었으니 열이 오른 것 같았다.
꼭 이렇게 가르쳐야 한다는 결론 같은 것은 하나도 내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각자가 가지고 있던 문제를 내놓고 서로 의견을 나눔으로써 더 열심히 해보자는 격려의 의미는 아주 컸다.
연변에서 온 학자나 체코에서 온 학자들은 자기가 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확신을 갖고 돌아갔으리라 믿어지는 그런 심포지엄이었다. 그리고 우리한국인 선생들에게는 우리 나라 말이 상당히 힘이 센말이라는 것을 절감하는 기회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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