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웨이트 거리에 외국노동자 득실(지구촌화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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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전후특수 한탕” 꿈 물거품/유전복구 늦어져 거지신세
전후복구 특수경기를 기대하고 쿠웨이트에 몰린 10만여명의 외국노동자들이 생계난에 허덕이고 있다. 쿠웨이트시 거리는 요즘 풀죽은 모습으로 날품팔이를 기다리는 이들 노동자들로 넘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걸프전이후 국제여권사기단에 속아 몰려든 사람들로 쿠웨이트입국에는 성공했으나 직장과 돈벌이의 꿈은 커녕 귀국할 여비조차없어 하루하루 끼니를 이어가기도 어려운 형편이다.
이들은 매일 10여명씩 떼를 지어 망치나 페인트솔을 들고 대로변에 줄지어섰다가 쿠웨이트인들의 승용차가 멈추기만하면 차창속으로 머리를 들이밀고 자기를 데려가달라고 필사적으로 매달린다. 일의 종류나 자기의 기술,고용기간 등을 따져볼 겨를이 없다.
이들은 대개 쿠웨이트 정계인물까지 연루된 「신기루 장사꾼」으로 불리는 여권브로커들에게 속아 소·땅·가구 혹은 아내의 패물등 전재산을 팔아 여권 및 직업알선비 명목으로 4백디나르(1백4만원)를 브로커들에게 넘겨주고 고국보다 3∼10배의 임금을 받을 수 있다는 꿈에 부풀어 쿠웨이트에 입국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쿠웨이트에 도착하자마자 대부분 자신들을 기다리기로 된 쿠웨이트의 고용주 얼굴도 보지 못하거나 회사가 전쟁으로 부서져 재건중이라는 통보를 받고 절망하게 된다. 예외적으로 운이 좋아 약속된 일자리를 얻는 경우에도 임금이 브로커들의 약속에 3분의 1도 미치지 못하는 일이 대부분이다.
이집트국적의 할리파 마클라우프씨(36)는 1.2디나르(2천9백원)만 남은 지갑을 열어보이고는 『세상에 이럴수가 있느냐. 마호메트가 여기 있다해도 머무르고 싶지않다』면서 아무나 붙잡고 『돈을 돌려받을 수 없겠느냐』고 매달렸다.
이들 외국노동자들은 이집트국적이 대부분이며 나머지는 스리랑카·방글라데시·인도등 제3세계국가 출신으로 자국에서는 쿠웨이트에 관한 정보를 거의 접하지 못해 여권사기단에 걸려들었다.
걸프전 이전에는 세계최고부국중의 하나였던 쿠웨이트는 전후 이라크군이 방화한 유전이 완전 복구되지 않아 아직 국가의 주수입원인 석유수출이 어려워 지난 7월 제출하기로 된 내년도 예산안조차 현재까지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쿠웨이트의 알 사바왕가는 전쟁복구비 2백억달러(14조8천억원)외에도 미국에 진 전쟁빚을 남겨 두고 있고 야권의 전쟁책임추궁을 무마하기 위해 각 기업체 및 개인이 진 빚을 국가가 대신 떠맡았으며 그밖에 가구당 7만달러(5천1백80만원)씩을 지급하기로 약속했으나 석유수출국기구(OPEC)로부터 석유수출물량을 지난해의 20% 수준으로 제한받아 궁지에 몰려있다.
전후특수를 노리고 쿠웨이트에 진출한 한 외국기업가는 『6개월간 수백만달러를 투자했으나 아직 1센트도 손에 만져보지 못했다』고 허탈해하고 있다.
특히 중동문제전문가들은 쿠웨이트 경제가 92년말이나 93년이 돼야 겨우 정상궤도에 오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당장 생계가 어려운 외국노동자들의 불안감이 가중되고 있다.<이기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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