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한국인 피살] 정부, 파병 불연계 방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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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이라크 내 한국인 피살 사건을 이라크 추가 파병 계획과 연계시키지 않은 데는 "테러에는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1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민간인을 상대로 한 비인도적 테러는 결코 용납해서는 안된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정부의 테러에 대한 강력한 대응 의지에는 현지 민간인 보호와 파병 후 우리 군의 안전을 고려한 측면도 없지 않다.

정부가 사건 발생 하루도 안돼 '파병 불연계론'원칙을 정한 것은 이번 사건이 자칫 몰고올 수도 있는 국내의 논란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인상도 풍긴다. 윤영관 외교통상부 장관은 이날 회견에서 "이번 사건으로 파병 문제가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정부의 이런 입장에는 또한 국제사회에 대한 약속 이행이라는 측면도 있다.

외교관 2명이 피살된 일본 정부가 파병 계획에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밝힌 것과 이라크 파병국인 스페인.이탈리아 등이 다수의 희생자를 내고도 주둔 지속을 공약한 것이 정부의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정부로선 이라크 내 후세인 잔당 세력의 무차별 테러와 이에 따른 치안 부재를 파병의 명분으로 삼을 수도 있다. 정부가 파병 결정 때 밝힌 이라크 평화 정착과 재건은 이라크의 정세 안정 없이는 어렵다는 것이 입증된 것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파장은 만만찮을 전망이다. 파병 반대론이 세(勢)를 불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당장 파병에 반대해온 시민단체들은 "파병할 경우 더 큰 희생이 뒤따를 것"이라며 파병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내년 4월의 총선을 앞둔 정치권도 이런 분위기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는 만큼 파병을 재촉하는 목소리를 내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파병 문제가 국내 여론의 벽에 부딪쳐 진전을 보기 어려울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만큼 한.미 양국 간에 논의 중인 파병 세부사항 결정은 더 늦춰질 가능성이 커졌다. 이번 사건이 국회 파행과 맞물리면서 오는 9일까지의 정기국회 회기 내 처리는 사실상 물건너갔으며, 자칫 해를 넘길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따라서 파병의 세부사항이 정해져도 실제 파병은 장병 선발.교육 등을 감안하면 내년 4월 총선 이후에나 가능하다는 것이 대체적 시각이다.

파병 부대의 성격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정부는 공병.의료 중심 부대와 독자적 지역을 맡는 부대 파병을 검토 중이나 어떤 쪽을 택하더라도 안전을 고려해 치안 상태가 보다 양호한 남서부 쪽을 미국 측에 제시할 수도 있다.

파병 규모의 경우 3천명선으로 잠정 결정됐지만 안전 문제로 다소 늘어날 수도 있으며, 대테러 작전이 가능한 특전사 요원의 구성비율이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파병 부대에 경계병이 충분히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며 "파병 지역도 가장 큰 목표가 '안전한 지역'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영환.강민석 기자<hwasan@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cogit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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