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령<중앙대교수·유아교육>잡지광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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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얼마 전 여성잡지에 글을 쓴 적이 있었다. 우편으로 보내온 책을 들추면서 목차를 찾았지만 빨리 눈에 들어오지 않아 내가 쓴 글을 찾기가 어려웠다.
페이지를 휙휙 넘기며 찾아도 쉽게 찾아지지 않아 다시 목차를 찾기 시작했는데, 현란하고 아름다운 광고 속에 있을 법한 목차가 나오지 않았다.
『분명히 책이 온걸 보면 글이 있을 텐데…. 기사가 넘쳐 이번에 못 실었나.』 의아해하며 출근했다. 여성잡지를 구독하지 않기 때문에 찾는 게 굼뜬가 보다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만의 문제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10여 년만에 고국을 방문한 친구 내외도 똑같은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나누는 와중에『아니, 우리 나라 여성잡지들이 왜 그래요. 광고가 3분의 2는 되나봐요』하는 불평들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 신문 광고에 『김정일의 …』 『김일성의 …』등의 제목이 흥미 있을 것 같아 잡지를 샀는데, 도저히 목차를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기사라도 찾으려고 책장을 여러 번 반복해 넘겨보았지만 광고 때문에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광고지는 두껍고 기사가 실린 페이지는 얇아 자주 지나쳐 지더라는 것이다. 신경질이 나 집어치웠는데 지금도 화가 난다면서 광고 속에 목차가 들어갈 것이 아니라 책 첫머리에 목차를 두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옆의 분은 목차를 정직하게 앞면에 놓으면 광고를 보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광고를 차근차근 살피며 목차를 보라고 속에 넣어 편집했을 것이라며 출판인의 입장에서 변명했다. 『기사위주여야 한다』 『광고위주로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재정압박이 크다』는 갑론을박의 격렬한 논쟁 끝에 이런 형태의 잡지출판은 파행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선진국의 잡지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은 접어두고 라고 본말전도의 현상이라는 것이다.
광고주가 독자에 우선해 대우받으며 잡지 발행자의 재정적 이익이 먼저 고려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잡지를 주로 보는 여성들의 인격이나 권리를 무시하는 일이라는 견해에 모두 동의했다.
이런 현상은 극히 작은 일 같지만 그냥 웃어넘길 일은 아니다. 여성잡지를 보는 대중 여성들이 갖지도 못할 값비싼 물건의 광고를 보며 상대적 빈곤감을 느끼게 하는 것도 문제고, 여성은 아름다운 광고나 간결한 광고문구정도밖에 이해할 수 없다는 무의식적인 비하도 심상치 않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본말이 전도되어 파행적으로 운영되는 일이 정상적으로 인정되는 풍토가 사람들의 의식에 걸리지 않고 사회전반에 퍼지는 것이 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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