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러리 경선 거부한 손학규 '결정적 시기' 위한 명분 쌓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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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한나라당 대선주자 간담회를 마친 뒤 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말을 아꼈다. "간담회에서 말한 대로다"라고만 했다. '당이 손 전 지사의 입장을 반영하지 않는다는 불만이 캠프 내부에 많다'고 기자가 말하자 "허허허…지금 내 입으로 더 말하기는 그렇고"라며 답을 피했다. 간담회서 손 전 지사는 준비된 발언만 했다고 한다.

당초 손 전 지사 캠프에서 마련한 발언 초안은 "(특정 후보를 위한 들러리식 경선 규칙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손 전 지사는 수위를 낮춰 "(그런 룰에는) 합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곤 외부 약속을 이유로 20여 분 먼저 자리를 떴다.

'들러리를 서지 않겠다'는 말엔 경선의 시기와 방법에 대한 그의 불만이 깊이 배어 있다. 측근들은 "공정한 경선 규칙을 요구하는 배수진"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명박 전 시장 측이 선호하는 '6월 경선' 시기가 늦춰져야 하고, 박근혜 전 대표 측이 선호하는 '국민 50%' 참여 방식에서 국민 참여가 더 늘어나야 한다는 입장이다.

손 전 지사는 지난주 지방 순회 때 이런 얘기를 했다.

"줄세우기가 너무 심각하다. (나를 지지했던) 젊은 의원들이 찾아와 하소연한다."

한 측근은 "당 지도부가 이런 줄세우기를 견제해야 하는데 그럴 능력과 의지를 찾을 수 없다. 당마저 '빅2'에 줄서는 것 아니냐"고 불만을 터뜨렸다.

당 경선준비위가 지난주 발표한 '경선 예비후보 조기 등록'은 이런 불편한 분위기를 더 고조시켰다.

손 전 지사 캠프는 "특정 후보들 측에서 6월 경선과 국민참여 50% 경선 비율을 밀어붙이려 한다"고 비판했다.

손 전 지사로선 현재의 낮은 지지율을 올리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범여권 후보론 등으로 당 바깥의 지지도가 높은 만큼 경선 비율에서도 일반 국민의 참여를 늘리는 게 유리하다는 계산이다. 그런데 경선 시기와 방법을 바꿀 생각은 하지 않고, 조기 등록만 부각하는 당 경준위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손 전 지사 측은 다음달을 '분기점'으로 본다. 박종희 비서실장, 김성식 정무특보 등 핵심 측근들은 "절대 먼저 판을 깨지 않는다"며 탈당 가능성을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예측도 있다. 결정적 시기를 향해 한 발짝 두 발짝씩 명분을 쌓아가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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