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물,물…(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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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의학적으로 사람이 물만 먹고 살 수 있는 기간은 남자가 30일,여자가 40일이나 된다고 한다. 인간에게 있어 물의 중요성을 실감있게 설명해주는 대목인데,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물만큼 말썽많은 물질도 흔치 않을 것 같다. 폭우·홍수로 치명적 재난을 안겨다 주는가 하면 폐수·식수난 따위로 인간을 곤경에 빠뜨리게 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아니면 무색·무취라는 물의 특성때문인지 「물」이란 단어를 이용한 조어·속어들은 대체로 그 의미가 냉소적이다. 가령 누가 누구를 「물먹인다」하면 「따돌린다」「소외시킨다」는 뜻이고,6공화국을 가리켜 「물정부」라 함은 그 「줏대없음」「허약함」을 빗대고 있는 것이다.
지난주 보사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는 그 물의 문제를 가지고 한바탕 소란을 벌였다. 생수시판을 허용하느냐,규제하느냐로 여러해동안 갈팡질팡해 오던 보사당국이 지난 8월 국무회의에서 전격 결의된데 자신을 얻어 허용쪽으로 밀어붙이려 하자 국회의원들이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다.
연간 1천억 시장을 눈앞에 두었다 하니 우선 그 액수만으로도 중요한 사안이라고 해야겠지만,작년까지만 해도 「생수를 시판할 경우 수도물에 대한 불신감을 높이고,생수를 마시는 계층과 수도물을 마시는 일반시민들과의 위화감을 조장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생수시판을 막아오던 보사당국이 느닷없이 허용하려 하는 것은 아무래도 찜찜한 구석이 없지 않다.
불과 1년만에 수도물에 대한 불신감이 없어졌다는 것인지,혹은 「국민들에게 좋은 물을 마실 권리를 제한하는 것은 행복을 추구할 기본권의 보장에 위배된다」는 업자들의 논리에 밀린 것인지는 모르지만 보사당국은 생수시판 허용문제를 들고 나오기 전에 적어도 그 대전제인 수도물의 수질개선에 만전을 기하는 자세를 보여주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야당의원은 물론 여당의원들조차 강력하게 반대하고 나섬으로써 다시 주춤거리는 보사부의 모습은 「물정부」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정작 「물」을 먹여야할 사람들은 사회구석구석에 도사리고 있는데 엉뚱한 사람들이 국민들에게 엉뚱한 「물」을 먹이려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정규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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