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의 원정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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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소년기사 이창호 7관왕이 최근 임해봉 9단과의 동양증권배 세계바둑선수권전 결승5번 승부 제1, 2국을 두기 위해 중화민국의 대북에 다녀왔다.
이번 원정에서 이창호는 대단한 환영을 받았다. 그곳에서도 이창호의 인기는 엄청난 혼잡한 공의 세관에서도 우선 통과의 예우를 해주었으며 매스컴들도 일제히 「한국신동 이창호」에 대한 보도에 열을 올렸는가 하면 대북시장·시의회의장·이등휘총통을 만나는등 준국빈 대우를 받았다.
아마5단의 애기가인 이총통은 『바둑책이나 지면을 통해 이창호 신동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던 차에 이렇게 만나게 되어 반갑다』고 서두를 꺼낸뒤 『평소 나라의 큰 일이나 외교문제를 풀어 나갈때 바둑의 포석을 응용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창호는 이총통을 만나기 1주일전 노태우 대통령의 부름을 받고 청와대에 다녀오기도 해 며 칠사이에 두 나라의 국가원수를 차례로 만나 악수를 나누고 담소하는 영광을 누린 셈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16세 소년의 태도다. 한껏 뻐기거나 자랑할만도 하건만 언제 그런 일이 있었더냐는듯 담담하고 의연하기만 했다.
부시나 고르바초프를 만나고 못만나고에 일희일비하는 일부 정치지도자들이야말로 어린 소년의 태도에서 깨닫고 배워야 하지 않을까.
기성 오청원은 일찍이 『바둑은 사람공부가 이루어져야만 비로소 대성할수 있다』 고 갈파한바 있다. 평생을 다해도 이루기 어려운 그 사람공부를 16세 소년이 이미 상당한 경지까지 터득한듯 하니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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