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주의(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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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고르바초프가 소련의 새 지도자가 되고 처음 영국을 방문했을 때 서방매스컴을 깜짝 놀라게 한 사건이 있었다. 그것은 그가 동반한 부인 라이사 때문이었다.
그녀는 지금까지 보아온 소련지도자들의 부인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짧게 커트한 갈색머리에 수수한 맞춤복차림은 소녀처럼 발랄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래서 당시 영국의 매스컴들은 「붉은 스타가 탄생했다」는 등의 헤드라인을 뽑으면서 연일 라이사의 동정을 크게 보도했다.
레닌의 부인 크로프스카야를 제외하고 소련지도자들의 부인이 대중앞에 모습을 나타내는 일이라곤 별로 없었다.
스탈린은 혁명초기 첫번째 부인을 버리고 젊은 여비서와 재혼했다. 그녀는 결혼하고 30이 넘어 대학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아무도 스탈린이 결혼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사람들이 스탈린의 부인이 모스크바대학생이라는 사실을 알고 놀란 것은 그녀의 급사소식과 함께 장례위원명단이 발표되고서 였다. 그리고 더욱 놀란 것은 그녀가 스탈린에 의해 독살되었다는 소문을 듣고서 였다.
김일성의 경우도 부인을 대중앞에 잘 내세우지 않는다. 49년에 죽은 첫번째 부인 김정숙은 그렇다치고,수령실의 타자수였던 두번째 부인 김성애도 결혼초기에 잠깐 활동했을 뿐 70년대 중반이후엔 매스컴에 얼굴을 내놓은 일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지난 7월 평양을 방문한 당시 소련최고인민회의 부의장부부와 김일성부부가 나란히 서서 찍은 사진이 로동신문 1면에 난 것을 보고 온통 법석을 떨더니 엊그제는 김일성의 사위가 일본에 들렀다고 또 야단들이다.
북한을 비롯한 사회주의국가의 지도자들이 자신의 부인이나 가족들의 동정이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것을 꺼리는 것은 다른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이른바 「종파주의」를 배격한다는 뜻도 있다.
김일성은 언젠가 『지방주의·가족주의도 그 본질에 있어서는 역시 종파주의다. 하나는 크고 하나는 작을 따름이지 사실은 모두 종파주의』라고 말한 일이 있다. 따라서 몇몇 사람끼리 자기들의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 싸고도는 것을 가족주의라고 정의하며 그것을 철저히 배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가족주의의 표본이 바로 김일성­김정일 체제라는 점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일언반구의 해명도 없다.<손기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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