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복지 재정 예산처도 걱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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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과천 경제부처 기자실에 있다 보면 도무지 정치를 이해할 수 없다. 80만 개 사회서비스 일자리 창출, 비전 2030, 노인수발보험, 근로장려금제…. 요즘 과천 관가는 엄청난 대형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대개 서민을 위한 프로젝트다. 이쯤 되면 노무현 정권 지지도는 거뜬히 90%는 되어야 정상이다. 왜 지지도가 20% 남짓한지 도대체 영문을 알 수 없다.

굳이 서민들이 나라 곳간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는지 모른다. 국정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이 직접 "걱정 붙들어 매시라"고 당부한다. "우리 재정지출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낮다. 재정지출 확대에 더 적극적인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 "작은 정부론은 한국에는 맞지 않는다"….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22일엔 사회서비스 일자리 보고회에서 똑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다.

조세연구원은 현 추세대로 복지 지출이 늘어나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30% 수준인 국가부채 비율이 2050년에는 GDP를 능가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반면 대통령은 "우리 복지 지출은 서구의 3분의 1수준"이라며 "한국이 작은 정부로 갈 경우 국민에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했다. 조세연구원은 냉정한 현실에, 대통령은 당장 서민들의 어려운 살림살이에 무게를 두는 인상이다.

진짜 속사정이 궁금해 사석에서 기획예산처 관계자에게 솔직한 의견을 구했다. 그는"현 정부가 추진하는 복지정책은 재정 면에서 더 위험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큰돈이 들어가지만 단발에 그쳤던 예전 국책사업과 달리 이런 유의 복지사업은 한번 시작되면 계속 굴러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이 정부 들어 국가 채무(지난해 말 282조원)가 150조원 늘어난 것도 걱정이라고 했다. 정부 수립 후 54년간 쌓인 국가채무보다 노무현 정부 4년간 늘어난 빚이 더 많다는 것이다.

국가부채가 쌓여가면 당연히 미래 세대의 부담이 커진다. 내가 힘들지언정 절대 자식에겐 무거운 짐을 떠넘기지 않겠다는 게 이 땅 부모들의 마음이다. 세금을 쏟아부어 복지와 일자리를 늘리는 것만큼 손쉬운 정책도 없다. 달콤한 유혹이다. 하지만 자식세대를 생각하면 쓰디쓴 당의정(糖衣錠)이다. 요즘 저녁 늦게 퇴근하면 곤히 잠든 아이들 모습이 자꾸 안쓰럽게 보인다.

윤창희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