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꿈나무] 중세 소녀의 일기장 … 궁금하세요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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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소녀, 발칙하다!

캐런 쿠시먼 지음

이정인 옮김

생각과 느낌

328쪽, 9000원

초등 고학년 이상

13세기 중세 유럽에 살던 열 네 살 짜리 소녀의 일기장엔 어떤 내용이 적혀 있을까. 작가의 상상력은 여기서 시작됐다. 중세 잉글랜드에서 시골 기사의 딸로 태어난 캐서린의 인생은, 그녀의 일기에 따르면, 암울하다.

"숙녀 수업은 더 이상 못 참겠다. 바느질, 뜨개질, 술 담그기, 병 치료, 리넨 천 세기 등등 바보 같은 일은 한도 끝도 없다! 소금절인 고기에서 구더기를 집어내는 건 숙녀가 할 일이면서도, 나무 타기도 안 되고 강물에 돌 던지기도 안 되는 건 대체 뭣 때문이람?"

영주의 딸이지만 지금 상상하는 '공주'같은 생활과는 거리가 멀다. 벼룩은 쉼없이 살을 물어뜯고 비가 오는 날이면 성 안은 질퍽이는 진흙 천국이 된다. 아픈 곳엔 죄다 마늘과 거위 기름을 붙이는 민간처방 하나로 통일. 게다가 욕심 많은 아버지는 호시탐탐 부자 영주에게 딸을 시집 보내 한몫 단단히 챙기려 든다. 발칙한 소녀는 이에 검댕이를 바르고, 머리에 쥐 뼈다귀를 매달아 배우자 후보감들을 쫓아냈다. 대신 '짐승 같은' 아버지에게 뺨을 맞거나 엉덩이를 걷어차이는 봉변을 감당해야 했지만, 소녀도 지지 않는다. 목이 부어서 고생하는 아버지에게 딸기.물.식초에 개똥을 듬뿍 넣은 치료약을 만들어준다. 각종 치료약 만드는 일도 중세시대 영주 집안 여자들의 몫이었던 것이다. 사춘기 소녀의 좌충우돌 해프닝도 재미있고, 우리 나라로 치면 고려시대에 해당하는 중세 시대의 생활사까지 꼼꼼히 들여다볼 수 있어 매력적인 소설이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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