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태로 얼룩진 한씨 빈소/김종혁 사회1부 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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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시위현장 부근을 지나다 억울하게 총탄을 맞고 숨져 서울대병원 영안실에 썰렁하게 안치됐던 서울대 대학원생 한국원씨(27)의 빈소 주변을 취재하던 며칠간은 어느 때보다 안타까움의 연속이었다.
『추석을 자식·며느리와 함께 보내려 했는데 시신을 묻으러 내려가야 하다니….』
통곡하다 끝내 실신하는 모정이나 결혼 9개월만에 남편을 잃은 꽃같은 부인의 소리없는 흐느낌은 보는 사람의 가슴을 터지게 했다.
경찰의 유탄이란 날벼락을 맞은 한씨의 죽음에 직접 총기를 발사한 경찰관의 책임이 가장 크다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동시에 정보·사찰기관도 아닌 파출소에 한밤중에 몰려가 화염병을 던져댄 학생들도 비난을 면할 수가 없다.
그러나 서울대병원 영안실을 지키던 학생들은 시종일관 한씨의 죽음이 전적으로 경찰·기성세대·사회의 잘못 때문일 뿐이라는 태도였다.
20일 오전 분향하기 위해 찾아온 김원환 경찰청장의 차를 가로막고 욕설을 퍼부은 것까지는 이해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날 오전 11시30분쯤 조문하러왔던 교수에게 보인 학생들의 태도는 아무래도 상식이하다.
학생=당신 누굽니까. 뭐하러 왔어요.
교수=학생,조문객에게 그게 무슨 말버릇인가.
학생=방금 경찰청장이 다녀가서 그래요.
교수=아무리 미워도 조문하러 왔다면 그래서 되겠나.
학생=생각같아선 죽이고 싶은 ×들인데 무슨 인사가 필요합니까.
교수=….
교수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푹 내쉬고는 그대로 되돌아가 버렸다.
진상조사를 하겠다는 일부 국회의원의 추태도 가관이었다.
민주당 이모 의원은 영안실에서 기자들을 불러놓고 『경찰발표는 모두 거짓말이고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정조준 사격을 했다』며 목청을 돋웠다.
이의원이 일장연설하는 동안 비서인 듯한 사람은 영안실을 배경으로 연신 이의원의 사진을 찍어대기에 바빴다.
한씨의 죽음은 가슴아픈 일이고 결코 다시 발생해선 안되지만 학생들만 슬퍼할 권리를 가진 것도 아니고 특정인의 정치적 목적이나 선전용이 아니어야 함도 물론이다.
모든 사람들이 좀더 순수하고 이성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 진정으로 숨진 한씨와 유족들을 위한 행동이고 사건의 본질적인 문제점을 개선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답답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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