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잘잡는 대통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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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박대통령은 청와대 본관에 설치된 히터와 에어컨을 가동하는데도 무척 엄격했어요. 조금 덥거나 추워도 참고 견뎌 에너지를 아껴야되지 않느냐는 말씀이었지요. 여름철에 땀이 흘러도 일정온도가 되기까지는 에어컨을 못틀게했죠.
박대통령은 선풍기도 쓰지 않았어요. 더우면 창문을 열어놓고 부채질을 하셨죠. 열린 창문으로 파리가 들어오면 박대통령은 파리채를 능숙하게 휘두르면서 파리를 잡곤 하셨어요. 파리채로 파리를 잡은 대통령은 다른 나라에도 드물거예요.
더위때문에 고생한 사람중의 하나가 김실장이에요. 김실장방은 서향이라 오후가 되면 햇빛이 들었기 때문이죠.
하루는 땀을 뻘뻘 흘리는 김실장을 보고 비서들이 「선풍기한대 들여놓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라고 건의했으나 김실장은 반대했어요. 「각하가 부채질하고 계시는데 큰일날 소리」라는 대답이었죠.』
비서실장 김정렴을 지켜보았던 이들은 대부분 그의 수신에 대해 『오점이나 흠집을 발견해내기가 쉽지 않다』는데 동의하고 있다. 본래 성품탓도 있겠지만 김실장은 직업철학을 단단히 세우고 그 자신을 붙들어매려고 애썼다는 평가다.
그러나 이러한 수신이 곧 무리없는 치국으로까지 매끄럽게 이어졌는지에 대해선 좀더 추적해야 할 부분이 많다. 「비서역」의 분수를 넘지 않으려는 겸손은 때로 소극적인 운신을 낳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70년대의 정치는 유신으로 인해 그늘이 덮였었으니 김실장의 어깨에 떨어지는 책임도 작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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