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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백남준'을 키우려면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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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죽어서도 열정적으로 살아 있는 예술가, 백남준의 1주기가 지났다. 입시가 모두 끝나고 미래의 디자이너와 예술가들을 맞을 준비에 바쁜 요즘, 백남준은 현재의 예술교육과 입시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제2, 제3의 백남준을 배출하기 위해 예술대학은 어떤 입시를 치러야 하고, 또 어떤 교육을 해야 하나.

예술교육의 핵심은 자유로운 상상력과 창조적인 발상에서 출발한다. 그런 점에서 2001년부터 미대 입시에 도입된 '발상과 표현'은 큰 호평을 받았다. 특히 디자인 계열의 경우 기존 데생 위주의 실기로는 창의성을 제대로 평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수험생들은 시험 당일 현장에서 주제를 받는다. 비닐위생장갑, 목장갑, 두줄무늬 표백 목장갑 등이 올해 등장한 우리 대학의 실기 소품이었다. 짤막한 시가 제시문으로 함께 주어졌다. 남은 건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해 마음껏 표현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종종 미술학원에서 입시 예상 주제에 대해 모범 작품을 보여주고 '외우도록' 지도하는 경우가 있어 안타깝다. '따라 그리기'로는 변화하는 입시에 적응할 수 없다. 제2의 백남준은 꿈도 못 꿀 일이다. 미국 아이딜와일드 예술학교 윌리엄 로만 교장의 인터뷰 중에 한국 학생들의 포트폴리오를 보면 두 번 놀란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기술적으로 너무 뛰어나 놀라고, 모두 엇비슷해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는 것이다. 새겨들을 일이다.

얼마 전 학생들이 공모전에 출품할 가구를 디자인하기 위해 일주일 내내 방산시장을 이 잡듯이 뒤지는 것을 보았다. 결국 찾아낸 것은 수도꼭지에 쓰이는 고무패킹.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탄생한 작품은 나무판자와 고무줄만으로 손쉽게 조립하는 테이블과 의자였다. 공모전 대상 수상은 재료에 대한 기발한 발상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기교와 테크닉은 훈련으로도 가능하다. 그러나 상상력은 쉽게 키워지지 않는다. 사물을 독창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자유로운 형식으로 표현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새로운 발상과 다양한 시도를 위해 디자인 예술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재래시장과 쓰레기장을 뒤지고, 여행을 떠나고, 방학에도 작업실에서 새벽을 맞는다.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수석 큐레이터 존 헨하트는 백남준을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것을 처음 시도한 사람'이라고 평했다. 뛰어난 테크닉이나 세밀한 기교가 세계적인 예술가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백남준의 상상력에서 우리는 모범 답안 같은 건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걸 배운다. 만약 그가 따라 그리기 입시와 주입식 예술교육에 머물렀다면 전 세계가 주목하는 아트페어에서 사후 특별전을 여는 예술가가 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입시는 끝났다. 그러나 합격한 학생, 실패한 학생, 예술교육의 현장에서 이들의 미래를 함께 고민할 교육자들 모두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다. 누가 제2, 제3의 백남준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점이다. 아직은 무한한 가능성이 남아 있는 시작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미래의 디자이너, 예술가들에게 당부한다. 제발 모범 답안은 잊어라.

강윤주 계원조형예술대 교수·멀티미디어디자인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