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문창극칼럼

싸우면 더 강해지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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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검증이라는 말은 설득력이 있다. 또다시 대선 실패를 되풀이할 수 없다는 데서 공감을 얻고 있다. 또 대통령 후보에 대해 당연히 그 자리에 합당한 인물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혹자는 더 치열하게 싸워야 한다는 주문도 내놓는다. 그렇다면, 싸우면 더 강해지는가. 외적과의 싸움은 내부를 단단하게 만든다. 그러나 동지들의 싸움은 내부를 분열시킨다. 검증이라는 단어 자체가 '당신의 과거에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으니 밝혀라'는 것이므로 과오를 전제로 하고 있다. 인신공격, 흠집 내기로 번지기 쉽다. 동지가 적으로 변해 버린다.

한나라당은 이미 분열의 길로 접어들었다. 검증이라는 코스로 접어들면 그 길로 갈 수밖에 없다. 현재 50%의 지지를 얻고 있는 쪽은 "국민의 절반이 나를 지지하는데 왜 우리 당에서는 이렇게 헐뜯는가"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당을 떠나서 혼자의 힘으로 선거를 치르겠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반면 상대 쪽은 그가 나가기를 내심 바랄지도 모른다. 한나라당 후보만 되면 비록 지금은 열세라도 개인적 지지와 당의 힘을 합치면 이길 수 있다는 계산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더 기회라고 부추기는 주변 인물들도 있을 것이다. 이럴 때 검증작업은 상대를 내쫓는 수단이 될 수 있다. 분당의 촉매제가 되는 것이다.

후보로서 검증은 필요하다. 그러나 분열이 아니라 더 강해지려면 검증 절차에서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과거사 규명을 할 때 가장 조심해야 할 점은 규명 과정에서 본의 아닌 희생이 생기는 점이다. 과거사 규명 대상에 올랐다는 것 자체가 명예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검증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검증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 자체가 당사자에게는 약점이 될 수 있다. 이런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몇 가지 지켜야 할 일이 있다. 검증 요구는 반드시 사실에 근거한 것이어야 한다. 소문을 검증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나는 잘 모르지만 이런 소문이 있으니 해명하라'는 식이 돼서는 안 된다. 검증은 공개적이어야 한다. 뒤에서 흘리는 식이 돼서는 안 된다. 음해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검증작업은 최단 시일에 마무리돼야 한다. 기간이 길어질수록 검증은 서로를 파괴한다. 재판에서 유죄가 확정되기 전까지는 무죄라는 '무죄 추정의 원칙'이 있듯이 검증도 이런 전제가 있어야 한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예의가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가능하다면 1회로 마무리 짓는 것이 좋다. 검증 요구와 이에 대한 해명이면 족하다. 이런 문제는 결론이 나기 어렵다. 판단은 국민에게 맡기라. 검증에서 이런 원칙들이 지켜지기 위해서는 권위를 인정받는 원로들이 나서서 절차를 중재할 필요가 있다.

이번 대선의 향방은 한나라당의 검증 논란이 어떻게 마무리되느냐에 달려 있다. 한나라당을 반대하는 사람에게는 기회로, 지지하는 사람에게는 위기로 작용할 것이다. 사람들은 권력 의지가 강할수록 현실정치에서 살아남는다고 말한다. 우리는 그런 권력야심가들을 수없이 보아 왔다. 두 사람의 출사표가 권력을 향한 것이었다면 권력 의지가 시키는 대로 따라가게 될 것이다. 정치란 언제나 그래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야심을 넘어선 뜻과 사명감이 있다면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권력에 배고픈 사람들의 경쟁이 아니라, 나라와 명예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경쟁이 되기를 바란다.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보통 정치인과는 달라야 하기 때문이다.

문창극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