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삭감보다는 절약 연구할 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소련의 몰락, 미국주도의 국제질서, 북방정책, 누적된 사회간접자본 부족, 한국경제의 위기등 국내외 환경변화는 방위비·공무원 봉급등의 경직성경비를 낮추자는데 대한 여론을 불러오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이러한 당위성 자체가 곧바로 내년도나 후년도 예산삭감을 합리화할 수는 없다.
마치 씨를 뿌리는 「봄」과 추수하는 「가을」에 할일이따로 있듯이 이들 경직성 경비를 내년부터 줄이기 위해서는 과거 수년전에 「원인행위」라는 씨앗을 뿌렸어야 했다. 공무원 봉급을 줄이기위해서는 「다수의 보통 공무원제」를 지양하고 「소수정예제」를 먼저 선택해야만 했다.
이러한 구조적 변화는 기하지 않고 단지 이들의 봉급을 무턱대고 낮추는 일은 얼마 절약하지도 못하면서 이들의 사기를 해치게 된다. 이는 앞으로 남고 뒤로 손해보는 어리석은 처방이다.
만일 현 60만 대군을 5년이내에 30만으로 감축한다는 방침이 섰다면 많은 이들은 바로 내년부터 국방예산이 절감될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틀린 생각이다.
60만으로 싸우는 전략과 30만으로 싸우는 전략은 달라져야 한다. 이는 병력의 재배치를 의미하는 것으로 전선을 따라 구축된 군사시설은 새로운 장소로 이전되어야 한다.
이는 비록 5년후에는 많은 국방비를 절약케 할 수 있지만 당분간은 더 많은 국방비를 요구하게 된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국방비는 크게 투자비와 운영유지비로 구분된다.
투자비는 「5개년 계획」에 의해 이미 계약된 것이며 운영유지비는 병력을 줄이지않는한 더이상 절약될 수 없다.
83년부터 일선 군부대에서는 병사와 병사간에, 부대와 부대간에 비용절약 경쟁이 이루어져 왔다. 가장 중요한 전투인력인 하사관들이 박봉으로 군을 떠나고 있으며 많은 장교들이 그들의 봉급을 털어 비가 새는 내무반과 창고를 수리하고 있다.
이러한 상태에서의 운영유지비 축소는 비도덕적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야전에서의 구조적인 문제점들을 제기하는 것은 같은 돈을 쓰면서 전투장비의 정비상태를 향상시키자는 것이지 여기에서 수십, 수백억원을 줄여 사회간접자본에 돌려 쓰자는 것이 아니다.
군에서의 문제는 건전한 상식인의 눈에 쉽게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전문연구를 통해 발견되고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 경제기획원은 1원의 연구비에 인색해왔지 연구결과가 가져다줄 수백, 수천원은 보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우리가 대비해야할 전쟁이 6·25식이냐, 걸프전식이냐에 따라 군의 구조와 체질이 바뀌어져야 한다. 지금은 이러한 「원인행위」에대한 정책방향을 논할 때이지 국방비 증감부터 논할 때가 아니다.
봄에 할 일을 생략한채 먼저 가을에 할 일인 예산부터 가위질하려는 예산정부는 예산관리능력을 상실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