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분간은 “먹구름” 속으로…/소련 경제전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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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투자부진→고물가의 악순환/서방지원 말고는 방법 없어
소련 보수파의 쿠데타 실패 이후 「제2의 러시아혁명」이라 불릴 정도로 급격한 변화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소련 사태는 경제문제에서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고르바초프가 페레스트로이카(개혁)를 시작했으나 그 효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소련 국민들의 불만이 커진 틈을 이용,보수파들이 「더 많은 빵」을 약속하며 쿠데타를 일으킨 것,그리고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을 소련 경제의 희망으로 떠받들고 소련 국민들이 쿠데타군의 탱크를 막아낸 것등 모두 경제적 어려움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면 앞으로 소련 경제는 어떻게 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소련 경제는 당분간 전보다 더욱 악화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모스크바 주재 어니스트 앤드 영회계관리법인의 회계사 질뱅크스는 『쿠데타 실패로 사유재산제와 가격자유화 등이 급속히 도입되는등 시장경제화가 빨라져 장기적으로 긍정적인 전망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연방해체에 따른 각 공화국간 물자교환 등에 어려움이 예상되는등 당분간 혼돈과 불확실의 경제가 계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소련에 주재하는 한 서방외교관도 『구체제가 붕괴했지만 신체제가 정착되기까지는 상당기간이 필요할 것이며 서방자본이 본격적으로 들어오려면 내부적 혼란이 가라앉아야 하며 소련 은행체제가 마비될 것이 예상돼 앞으로 소련기업들의 자금난은 극심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독일 쾰른의 동유럽 및 국제문제연구소도 소련 경제가 악화 일로로 치닫던 지금까지의 관성대로 당분간 더욱 악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 연구소가 27일 밝힌 올해 상반기중 소련의 경제성적표는 그야말로 「최악」이다.
원유를 중심으로 한 수출이 전년동기대비 13% 감소했으며 수입은 47%나 감소,물자난을 가중시키고 있다.
공업생산은 6% 감소했다. 이를 부문별로 보면 ▲농업 11% ▲석유생산 9% ▲석탄생산 11% ▲철강 10% ▲주택건설 20% ▲자동차생산 14% 각각 감소했다. 특히 농업부문에서 육류가 12%,우유가 10% 감소한데다 곡물은 연말까지 20%가 줄어든 1억9천만t 수확에 그칠 것으로 보여 올 겨울 소련의 식량사정은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분리독립 공화국들의 천연자원제공 거부와 독자적 시장체제 구축 움직임이 가세할 경우 연말까지 경제성장은 지난해보다 10% 떨어지고 인플레이션 80%(90년 9%),실업률 5%,외채 7백50억달러(90년말 현재 6백25억달러)를 기록하게 되는등 심각한 상황에 돌입하게 될 전망이다.
경제난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는 것이 투자부진이다.
올해안으로 투자를 완료하기로 계획했던 3백31개의 프로젝트중 지난 상반기동안 겨우 3건이 목표를 달성했을 뿐이며 지난해 투자계획 99건 가운데 투자가 완료된 사업은 단 5건에 불과했다.
이같은 투자의 부진은 저생산→고물가→저투자의 악순환을 형성,경제사정을 더욱 어렵게 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같은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서방의 자본과 기술지원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그러나 이것도 독일을 제외하면 나라별로 이해관계가 얽혀 여의치 못한 실정이다.
이러한 경제적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소련은 지난해 보수파들에 의해 제지됐던 스타니슬라브 샤탈린 전 대통령보좌관의 「5백일 계획」을 다시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
독일의 소련문제 전문가들은 이번에 연방 총리로 기용된 이반 실라예프 경제팀에 지난번 미 하버드대 교수들과 이른바 「대거래」 (소련의 개혁과 서방의 돈을 바꾼다는 뜻) 계획을 창안한 그리고리 야블린스키가 포진하고 있는데다,옐친 대통령의 권력이 커진만큼 옐친이 적극 지지하고 있는 5백일계획이 시행에 옮겨질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망하고있다.<베를린=유재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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