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4마리 '사랑의 돼지' 몰고가세요

중앙일보

입력

6일 오후 6시 서울 송파구 잠실본동의 한 돼지고기 전문점.

식당을 꽉 매우고 있는 손님들, 오가는 술잔에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 등. 겉보기엔 여느 삼겹살집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 특이하게 식당 벽면에 돼지저금통들이 빼곡했다. 이 돼지저금통에 어떤 사연이 있을까.

이 돼지저금통은 처음 손님들을 위한'마일리지 서비스'개념으로 탄생했다. 이 식당의 주인 양회성(45)씨가 2003년 가게 개점 1주년 기념으로 100개의 돼지저금통을 구입해 식당에 비치해 놓았다.

하지만 마일리지 돼지저금통을 만들어 놓고도 수개월 동안 가게를 찾지 않는 손님들이 많아 적립금을 어떤 용도로 사용할지 고민했다는 양 사장.

이때 양 사장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장애인들이 만든 물건을 사달라"며 경북 김천의 장애인복지시설인 천사재활원으로부터 온 전화였다.

"물건 안 보내주셔도 좋으니 제가 계속 후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세요"라며 양 사장은 오히려 이때 그들에게 부탁을 했다.

이 것이 돼지저금통에 모인 적립금을 모아 천사재활원에 후원하게 된 계기가 됐다.

2004년 말 15만 원을 후원한 것을 시작으로 매년 2차례씩 양 사장은 그동안 150여만을 보냈다.

사실 적립금만 보낸 것은 아니다. 2004년 처음 돼지저금통을 뜯었을 때 모인 돈은 고작 5만 원.

양 사장은 자신의 사비 10만 원을 꺼내 15만 원을 만들었다.

"도와준다고 말은 했는데 액수가 너무 적더라고요. 아내에게 물어봤더니 선뜻'돈을 보태라'며 돈통을 열더군요."

지금도 사비를 보태 후원금을 보내고 있지만 양 사장의 선행이 입소문을 타면서 돼지저금통에 모이는 액수가 배 이상 많아졌다.

저금통 수도 714개로 늘어났다.

"나 안 줘도 좋으니 좋은데 써달라"며 적립금 반환을 거부(?)하는 손님들이 생겼는가 하면 주머니를 털어 돼지저금통에 돈을 넣는 학생들도 많았다.

사실 이 같은 돼지저금통 선행 말고도 양 사장은 이미 이 동네에서'따뜻한 가슴의 사나이'로 통한다.

껌을 팔기 위해 가게에 들어오는 노인들을 붙들어 놓고 고기를 구워 대접한다. 먹지 않겠다는 노인에게는 식구 수를 물은 뒤 주방에서 직접 고기를 들고 나와 품에 안긴다. 특히 성남 노인정에서 숙식을 해결한다는 한 노인에게는 2005년 알게 된 후로 명절 등 특별한 날마다 5kg 분량의 갈비를 보내고 있다.

"껌 팔아서 돈을 얼마나 번다고 매번 가게에 올 때마다 음료수를 사오는데 오히려 죄송스러워요."

가게에 찾아오는 노숙자들에게는 자신의 옷을 선뜻 내준다. 2005년 중국장애인예술단이 한국에서 공연을 한 뒤 제대로 돈을 받지 못해 애태우고 있을 때는 60여 명의 예술단원 전원을 식당에 초대해 고기 파티를 열어주기도 했다.

오전 11시부터 새벽 4~5시까지 영업을 하는 양 사장은 하루 5시간도 채 자지 못한다. 성수동에 아파트를 구입하느라 낸 융자와 2004년 가게를 확장하면서 빌린 돈 등 빚도 2억 원이 넘는다. 하지만 양 씨의 선행은 이제 일상 생활이 됐다.

양사장에겐 한가지 서운한 일이 있다. 송파지역 조손 가정 아이들에게 고기 파티를 열어주고 매달 쌀 한 포대씩이라도 지원하고 싶다며 지난해 말부터 동사무소와 사회복지관에 아이들을 소개시켜 달라고 수차례 요구했다. 하지만 이들 기관에서는 아직 연락이 없다.

"고깃집 하면서 아이들 고기 먹이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잖아요. 아이들이 잘 먹고 잘 커야 우리의 미래도 있는 건데…."

양 사장은 50세가 되는 2012년까지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 서울 외곽에 가든을 차린 뒤 잔디를 심고 가꾸며 장애인들이나 형편이 어려운 노인과 아이들이 가게에 오면 무료로 식사대접을 하고 싶은 소박한 꿈이다.

"아이들을 배불리 먹이고, 생활에 지친 장애인과 노인들에게 작은 미소를 되찾아 주는 게 작은 소망입니다."

돼지저금통을 키우며 '그냥 누군가 돕고 싶었다'는 소박한 꿈을 현실로 만들어가고 있는 양 씨. 이웃을 향한 양 씨의 따뜻한 마음과 함께 이 가게'714마리 돼지들'은 오늘도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프리미엄 최석호 기자 bully2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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