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목격자 뭔가 숨기고 있다/각기다른 오대양 목격자 진술(추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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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신고전 연고시체 확인/변사예측 가능성 짙어/세모개입 드러난뒤 진술 번복
오대양의혹의 최대핵심인 87년 8월 32명 집단변사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집중되고 있는 가운데 당시 사건현장에 있었던 이기정씨등 참고인 진술에 대한 신빙성 여부가 사건해결의 열쇠로 떠오르고 있다.
현재 당시 정황을 설명해줄 수 있는 단서는 이들의 증언을 통한 상대적 증거밖에 없어 검찰은 이들의 진술을 토대로 자살·타살여부등 사건당시를 재구성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검찰은 이들의 당시 정황진술 내용중 논리·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나 서로 엇갈리는 부분이 많아 이들이 진실을 말하고 있는가에 대한 판단에 고심하고 있다.
87년 사건발생직후의 경찰수사에서부터 최근의 재수사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진술에는 뭔가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당시 현장에는 숨진 박순자씨의 남편 이기정씨(57),오대양 용인공장 종업원 김영자(45·여)·정화진(46·여)씨,박씨의 동생 용준(41)·용주(35)씨 형제,용준씨가 경영하는 오주양행 직원 신현익씨(30)등 6명을 포함해 모두 10여명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들은 시체발견 직전까지 박씨등이 은신해 있던 천장에서 아무런 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진술하고 있다.
김영자씨의 진술에 따르면 합판을 깔아놓은 천장에서는 평소 조금만 움직여도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나기 일쑤였다는데도 현장에 있던 이기정씨등은 32명이 차례로 숨져간 사망추정시간대에 과연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을까.
또 이기정씨 등은 김씨가 시체를 발견하고 알려준 목욕탕 옆 큰방의 천장구멍을 세시간이나 공장을 뒤진 뒤에야 뒤늦게 발견,변사현장을 확인하고 경찰에 신고했다는 점도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다.
김씨는 검찰에서 87년 당시 경찰진술과는 달리 천장에서 박순자씨가 『지금 천사의 소리가 들린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으며 이것이 「들림」이 시작되는 징후인줄 알았었다고 진술을 번복하고 있다.
수사방향을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진술임에도 불구하고 김씨가 4년전에는 이런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가 이제서야 털어놓는 이유도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다.
정화진씨는 박용주씨가 다녀간뒤 박씨의 말을 그대로 옮겨 「삼우도 고통받고 있다」는 메모를 천장위로 올렸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박씨는 당시 그런 말을 한적이 없다고 서로 상반된 진술을 하고 있다.
또 정씨는 숨진 이경수씨에게 천장위로 가위를 올려준 시각이 처음에는 사건전날인 28일 오전 11시라고 했다가 나중엔 오후 5시라고 진술이 오락가락하고 있다.
이기정씨는 김영자씨가 『할머니가,할머니…』하며 손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하는 것을 보고 공장으로 달려갔다고 밝히고 있지만 오주양행 직원들의 진술에 따르면 이씨는 공장에 도착하자마자 천장을 가리키며 몹시 불안한 모습으로 『영호야,재호야,경찰이 갔으니 모두 나와라』라고 소리쳤다는 것이다.
이씨는 부인 박씨등이 천장에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음에도 어떻게 도착하자마자 천장을 가리키며 불안한 모습으로 소리쳤던 것일까.
오주양행 직원들의 행적에도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많아 김영채씨등은 『천장의 벌어진 틈새로 시체들을 발견한뒤 처제가 그속에 있는가 확인하러 위로 올라가 시체를 뒤졌다』고 말하고 있으나 애초 박용준씨의 연락을 받고 영문도 모른채 공장에 달려갔다면서도 천장의 시체를 발견하자 처제 걱정부터 했다는 부분도 어색하다.
검찰은 당초 이들이 최근에야 오대양의 망령에서 벗어나 87년과 달리 믿을만한 진술을 하고 있다고 밝혔었다.
검찰은 초기에 김·정씨등이 집단자수사건에 대해 『배후는 없다』고 확신에 찬 진술을 해왔으나 수사결과 세모측의 배후조종이 밝혀진 점에 비추어 이들 진술의 신빙성도 원점부터 재검토하지 않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대전=권영민·홍병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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