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제11회 삼성화재배 세계 바둑 오픈' 10년 숙적의 재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제11회 삼성화재배 세계 바둑 오픈'

<결승 제1국>
○ . 창하오 9단  ● . 서봉수 9단

제1보(1~14)=서울을 떠난 1월 20일은 대한(大寒)이었는데 화창한 기운이 봄날 같았다. 이상기후가 어디서나 화제였다. 비행기를 타니 이창호 9단의 옆자리였다. 지난번 기차 여행 때도 그랬듯이 이 9단은 줄곧 책을 읽으며 갔는데 얼핏 제목을 보니 '쓰나미'란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이 9단은 "쓰나미가 지나가고 난 뒤 그 지역 사람들의 삶을 엮은 일종의 리포트"라고 설명해 줬다. 이 9단의 독서 취미는 참 다양하다. 상하이에 도착하니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고, 한기가 옷 속으로 파고들었다.

21일 밤의 전야제 때 두 기사는 나란히 앉아 인터뷰에 임했다. 상하이는 창하오(常昊) 9단의 고향. 이곳 신문들은 이창호와 창하오의 대결을 '호호지쟁(昊鎬之爭)'또는 '10년 숙적의 재회'로 표현하며 한 면 전체를 헐어 대서특필하고 있었다. 창하오가 지난 세월 동안 이창호에게 연전연패했으나(6승20패) 창하오는 상처를 딛고 재기에 성공했다는 점, 그리고 이들 둘은 긴 싸움 끝에 서로를 이해하는 친구가 되었다는 점 등이 이번 결승 대결을 더욱 빛나게 만들고 있었다.

22일 아침 10시. 창하오가 먼저 와서 상석을 비워둔 채 기다리고 있었고 정각에 이창호가 등장했다. 돌을 가리니 이창호의 흑. TV 생중계 때문에 두 사람은 자리를 바꿔 앉았다. 중국바둑협회의 왕루난(王如南) 주석이 대국 개시선언을 했고, 이창호 9단이 우상에 첫 점을 놓았다. 기다리던 카메라들의 플래시가 한꺼번에 터졌다.

검토실에 돌아와 보니 창하오의 백 6과 8이 모니터에서 반짝거리고 있었다. 높이 둔 다음(백 6) 즉각 들어온(백 8) 이 두 수를 보며 인터넷 중계를 맡은 조한승 9단이 "중국식 포석을 깨기 위해 연구된 수법 같다"며 바짝 긴장한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창하오는 이미 준비된 수를 발동시키고 있었다.

박치문 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