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기자 상호방문 왜곡말라(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북한의 실상을 직접 둘러보고 나름대로 남북학생교류의 길을 트려던 남한학생들의 희망이 당장 실현은 어렵게 됐다. 순수해야 할 학생들의 모임에 북한측이 기어이 정치성을 끼워 넣으려 하는 탓이다.
북한지역 방문취재를 준비중이던 서울지역 대학신문기자연합 대표와 북측의 학생대표들이 12일 판문점에서 만났던 것을 곡절이야 어떻든 모양새는 좋아 보였다. 가능하면 교류의 폭을 넓혀야 한다는 남북한 관계의 당위성에서 보자면 분단후 처음으로 판문점에서 만났다는 것은 획기적인 일임에 틀림없다.
이 획기적인 일이 단순한 만남으로만 끝나지 않고 앞으로 우리 민족을 이끌고 갈 남북한 학생들이 진정 서로 교류하고 이해하는 바탕을 마련할 수 있었다면 남북한 관계개선의 새로운 전환점으로 기록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순수한 바람은 북한측의 정치적 의도 때문에 실망으로 바뀌어버렸다. 회담장에 나간 앳된 남쪽 학생에 비해 너무 나이가 든 북쪽 학생이 상대로 나설때부터 꺼림칙 하기는 했지만 그들이 내놓은 취재일정과 조건은 북한당국이 전혀 교류의 의도가 없음을 확인시켜 주었을 따름이다.
더욱 답답한 일은 아직도 북한측이 남한,특히 학생들에 대해 그릇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현시킬 의사가 없다면 그냥 침묵으로 일관했으면 될 일을 오히려 정치적으로 이용하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 보이고 있음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미 오랫동안 검토할 시간적 여유가 있었던 남쪽 학생들의 제의에 느닷없이 하루만에 만나자고 제의한 것이나 만나자마자 하루만에 취재에 나서자고 요구하는 저돌성 등은 신중해야 할 남북한 관계에서 극히 경계해야 할 일이다.
더욱이 그들이 택한 시기가 우리의 실정법을 위반하고 방북한 학생들이 판문점을 통해 내려오는 날,이른바 「범민족대회」의 정치적 선전을 벌이는 날이라는 점은 그들의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 분명하게 해준다.
우리 정부가 책임있는 당사자끼리의 대화창구를 열어놓고,오히려 혼선만 빚을 우려때문에 막고 있는 범민족대회 같은 것만 골라가면서 진정한 남북화해를 이룰 수 있다고 믿는지 북한당국에 묻고 싶다.
이처럼 불신만 조장하는 행동은 2주일 앞두고 있는 고위급회담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기왕에 방북취재에 응하겠다고 나선 이상 북한측은 그릇된 정치적 의도를 버리고 본래 취지대로 성사가 되도록 성의를 보이기를 기대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