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 잠긴 자카르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6일 오후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의 언덕지대에 자리 잡은 카레트 공동묘지. 며칠 동안 무섭게 퍼붓던 비가 잠시 멈춘 사이 홍수로 숨진 두 구의 시신을 묻는 장례식이 치러지고 있다.

유족들이 통곡하는 뒤로 아이들이 웃으면서 묘지 주위를 뛰어다니고 있다.

묘지 여기저기엔 빨래가 나부낀다. 커다란 천막 밑에선 여인네들이 불을 피워 음식을 장만하고 있다. 묘비 옆에 매트리스를 깔고 누워 있는 노인들도 보인다.

지난달 31일부터 계속된 폭우로 자카르타에 5년 만의 최악 홍수가 발생한 가운데 카레트 공동묘지가 난민촌으로 변했다고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이 7일 소개했다.

신문은 수백 명의 주민이 홍수로 물에 잠긴 집을 버리고 식수가 제공되는 공동묘지에서 숙식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대부분 저지대에 살던 빈민이다. 1일 밤 가슴까지 차오르는 물을 피해 네 살배기 딸을 안고 이곳으로 피신한 시티 아미나(23.여)는 "우리는 죽은 사람들 사이에서 잠을 잔다"며 "무섭지만 달리 갈 데가 없다"고 말했다.

폭우와 강 범람으로 자카르타시의 75% 이상이 침수되면서 현재까지 50여 명이 사망하고 34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집을 잃은 주민들은 인근 학교.사원.관공서 등에서 임시로 생활하고 있다.

자카르타의 주요 호텔들은 홍수를 피하기 위해 몰린 부유층 주민들로 방이 동났다. 공동묘지는 가난한 이들의 피난처 가운데 하나다. 6일에는 폭우가 일단 멈췄다.

인도네시아 기상 당국은 "이제 최악의 폭우는 지나갔으며 앞으로 며칠간 가벼운 비만 내리다가 그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1200만 인구가 살고 있는 자카르타 시내의 절반은 여전히 물에 잠겨 있다. 물이 빠진 상당수 지역에는 아직 식수와 전기 공급이 재개되지 않고 있다. 보건 당국은 우려했던 전염병은 발생하지 않고 있으나 식수와 의약품, 분유 등의 부족 현상이 심각하다고 밝혔다.

유철종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