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제11회 삼성화재배 세계 바둑 오픈' 서봉수, 돌을 던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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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회 삼성화재배 세계 바둑 오픈'

<4강전 2국 하이라이트>
○ . 창하오 9단  ● . 서봉수 9단

장면도(111~126)=111로 후퇴하며 서봉수 9단은 속으로 후후후 웃었다. 나이가 들면서 지고 또 졌다. 업보처럼 패배가 따라다녔고 때로는 승부가 너무 힘들구나 싶었다. 한데 이번 삼성화재배에서는 이기고 또 이겼다. 오랜만에 재미를 맛봤고 힘도 솟아났다. 문득 '내가 바둑이 늘었나' 싶기도 하고 '아직 안 죽었나' 싶기도 해서 슬쩍 우승까지도 생각해봤다. 한데 그게 여기까지구나 싶자 쑥스러움과 함께 회한의 웃음이 솟아났던 것이다.

111로 '참고도1'의 흑1로 끊는 것은 백 2, 4의 먹여치기로 흑▲ 한 점이 잡히고 만다. 할 수 없이 111로 물러선 다음 113으로 최후의 일격을 던져봤으나 이미 달걀로 바위치기. 창하오(常昊) 9단은 챙길 것을 다 챙긴 뒤 126으로 살아버렸다.

'참고도2'흑1, 3으로 파호해도 백4, 6으로 간단히 집이 난다.

서 9단은 여기서 돌을 던졌다. 그냥 일어나기 뭐해서 TV 카메라가 주시하는 가운데 간단한 복기를 나눴다. 머릿속은 멍했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문을 나서면서 그는 무심결에 하루 동안 격전을 치렀던 대국장을 돌아보았다. 마치 오랜만에 무대에 섰던 흘러간 가수처럼 아쉬움이 가슴을 쳤다. 세계대회 4강이라. 잠시 화려했구나. 내가 이곳을 다시 돌아올 때가 있을까.

기자들은 승자 창하오에게 몰려갔고 한 쪽에 서 있던 서 9단은 금방 사라졌다. 혼자 차를 몰고 서울로 떠났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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