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경으로 치닫는 독-북밀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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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제2차 세계대전이후 유사이래 가장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온 독일과 프랑스 사이의 이른바「파리-본 유럽 추축」체제에 금이 가기 시작하는 징후들이 최근 들어 잇따라 나타나고 있다.
이는 특히 독일의 통일과 이로 인한 동서냉전체제 붕괴이후「베를린-모스크바 추축」이 공공연히 거론될 정도로 독소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 공고해지고있는 것과 시기적으로 일치하고 있다.
이같은 변화는 향후 유럽, 나아가 동서관계 전반에 걸친 새로운 판도형성의 시작을 예고하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 사이의「전같지 않은」관계는 지난 6월23일 독일바이에른주 바트비스제에서 만난 콜-미테랑 양국 정상회담결과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회담 후 양국정상은 유고사태와 관련, 『아직은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공화국을 국제법상 주권국가로 인정할 시점이 아니다』고 발표해 겉으로 보기엔 양국정상간에 이견이 없는 것처럼 되어있다.
그러나 독일과 프랑스는 유고사태와 관련, 지금까지 첨예한 의견대립을 보이고 있다.
독일로서는 스스로가 민족자결원칙에 의해 통일을 달성한 만큼 독립을 주장하는 두 공화국도 같은 원칙에 따라 독립을 이룩할 권리가 있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프랑스는 바스크족 분리독립문제로 골치를 앓고있는 스페인과 함께 『두 공화국의 독립에 반대하며 유고의 연방유지를 찬성한다』는 입장을 그간 수차에 걸쳐 분명히 밝혀왔다.
물론 프랑스도 코르시카의 독립문제로 시달리고는 있지만 이는 표면적인 이유일 뿐 사실은 독일을 견제하기 위해 이같은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는 사람들이 많다.
경제적으로나 지정학적으로 독립을 요구하는 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 두 공화국은 물론 발칸반도 전체에 확대되고 있는 독일의 영향력을 막아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프랑스의 입장이다. 즉 유고가 연방국가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할 경우 독일의 개입가능성은 그만큼 줄기 때문에 유고, 나아가 동구권 전체에 대한 독일의 새로운「팽창주의를 그만큼 견제할 수 있는 것으로 프랑스는 계산하고 있는 것이다.
독일과 프랑스의 이같은 미묘한 관계, 즉 프랑스의 대독일 견제는 사실상 독일통일이후 계속돼 왔다.
지난해12월 제네바 우루과이라운드회담 때 전통적인 농업국가인 프랑스와 세계최대의 수출국 독일은 농업보조금 철폐문제에서 이견을 보였다.
이때 독일은 결국 프랑스에「이끌려」농업보조금의 대폭삭감에 반대하는 프랑스편에 섰지만 독일로서는 내심 미국의 입장에 동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지난번 런던 서방선진7개국(G7)정상회담 때 미테랑 프랑스대통령은 G7국가들의 무기를 등록하자는 독일 측 주장을 완강히 반대, 결국이 문제는 흐지부지됐다.
이에 대해 독일측에서는 프랑스가「독일이 포함된 G7이 아니라 2차대전후 전통적 강대국이랄 수 있는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이 전세계 무기판매질서, 나아가 주요 국제문제를 결정해야 한다」는 독일견제심리에서 이같이 주장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영국과는 달리 독일의 통일에 대해 애써 태연한 모습을 보였던 프랑스지만 거대독일에 대한 잠재적 피해의식이 결국 이같은 대독견제로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어쨌든 이같은 독일·프랑스사이의 감정대립은 우선 눈앞에 다가온 유럽통합에 무시 못할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베를린=유극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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