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칼럼] 기업-정치권 공생 청산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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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상법은 기업의 이사회와 이사들이 내린 결정이 회사와 제3자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 법령이나 정관을 위배하거나 임무 소홀로 발생한 것이라면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다. 그러나 경영이 확실한 수익이 예상될 때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고, 불확실성과 위험을 감수해야 할 경우도 있다.

경영진의 판단에 따른 제3자와의 거래에 불법행위가 있다면 경영진은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손해가 발생할 때마다 주주나 제3자가 경영진을 상대로 법적 판단을 받으려 하거나 정치권이나 외부의 부정한 관행으로 인해 마지못해 이뤄진 업무처리가 수사의 대상이 된다면 기업은 과감한 투자나 고수익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잃을 수 있다. 주주의 대표소송이나 제3자가 손배 청구를 할 때는 경영진의 합리적인 판단의 결과인지, 임무 소홀인지를 검증해 봐야 한다.

부실기업을 인수해 발생한 손해에 대해 이사에게 손배 책임을 인정하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경영진의 경영상 판단임을 인정해 손배 책임에서 벗어나게 하는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 이런 판결은 이사회의 책임 경영을 촉구하고 합리적인 기업경영 관행을 만들어 내는 데 자극제가 된다. 그러나 소송이나 수사의 진행은 국제거래 관계를 무시할 수 없는 기업에는 큰 부담이다. 대외 신인도 하락으로 기업의 발목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경영진의 판단에 따른 거래를 모두 법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능사가 아닐 수 있다. 그렇다고 경영상 판단을 책임을 벗는 수단으로 악용해서도 안 된다.

경영진에 법적 책임을 묻는 소송이 늘어날 전망이다. 잘못하면 기업은 소송의 소용돌이 속에서 문을 닫는 사태까지 예상할 수 있다. 기업과 정부가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선 기업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정비해야 한다. 기업 내부적인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고 정부와 정치권의 입법과 제도 정비, 법원의 판결을 통해 기존의 불합리한 관행을 제거해야 가능하다. 또 어느 정도 묵인됐던 대기업과 정치권의 공생관계를 청산해야 한다. 기업이 열심히 일하고 정당한 세금을 납부하면 기업이 정권에 잘못 보여 피해를 보지 않을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물론 정치권의 환골탈태도 절실하다.

김성기 법무법인 씨에이치엘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