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쫓는 자와 쫓기는 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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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뒤를 돌아본다. 그리고 생각해 본다. 지금까지 이곳에 어떻게 왔는가를. 찾아 왔는가. 쫓겨 왔는가. 그것을 알아야 가야할 곳도 안다.

여기 평생을 쫓기며 살아온 한 인생이 있다. 이호철. 정권 내의 손꼽히는 실세다. 청와대 민정 1비서관이란 자리와는 상관없다. 대통령이 정신적 형제로 여긴다는 사람이다. 이광재.안희정 등의 실세들과는 다른 차원의 동지다.

1982년이었다. 부산 학림사건으로 그는 수배 중이었다. 6개월간 도피 생활을 했다. 어느 날이었다. 어머니 생신을 맞아 고향을 찾았다. 부산 동래터미널을 나오는 순간이었다. 그는 자신을 쫓아다니던 담당형사와 마주쳤다. 호철은 혼신의 힘을 다해 뛰었다. 간신히 한 은신처로 갔다. 운동권 친구들의 아지트 같은 곳이었다. 그곳에서 한 운동권 후배의 전화를 받는다.

"형, 내일 부산 미 문화원에 불지를 거래".

듣기에 따라선 일종의 압력과 같았다. "형은 무엇하고 있느냐"로 들리는 듯도 했다. 순간 호철은 이렇게 대답했다. 야속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내 코가 석 자다. 엄마 생일 때문에 한번 온 기다. 제발 나한테 그런 말 하지 말아라."

뒤쫓아 오는 형사를 따돌린 지 반나절 만이었다. 그러나 호철은 앞서 달려가는 후배한테 반대로 쫓기고 있었다.

다음날이었다. 미 문화원은 불타고 있었다. 호철은 집에 가지 않았다. 그 길로 도망쳤다. 분명 어제 만난 형사가 자신의 소행이라 여길 거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변장에 능한 그는 모습을 바꿨다. 이미 터미널과 역엔 형사들이 깔렸다. 그래서 시내버스를 탔다. 기장으로 가서 울산을 거쳐 서울로 갈 계획이었다. 버스 옆자리엔 한 아줌마가 앉아 있었다. 신문을 펼쳐 읽고 있었다. 그 날 짜 부산일보 사회면이었다. '방화 용의자 이호철 수배'가 톱기사 제목이었다. 호철은 아줌마에게 넌지시 말을 건넸다.

"신문에 난 그놈 아주 나쁜 놈이지예."

그러자 아줌마가 정색을 했다.

"젊은 사람이 그런 식으로 말 함부로 하지 마소. 잘한 일은 아니지만 뭐 이유가 있지 않겠노. 젊은 사람이면 얘들이 와 그랬을까를 생각해야제. 그렇게 말하면 되나".

후배를 따돌린 지 하루 만이었다. 그러나 이내 초면의 아줌마한테 호철은 또 쫓기고 있었다.

사실 그는 버스를 탈 때만 해도 모든 걸 집어치우자 생각했다. 도망다니는 게 힘들다고 느꼈다. 그저 평범하게 살아보자고 다짐도 했었다. 그래서 방화범이 나쁜 놈 아니냐고 물었던 거다. 그러나 아줌마의 말은 그를 다시 사지(死地)로 내몰았다.

쫓기는 인생은 그렇게 이어졌다. 쫓기고 쫓기다 잡혀 감옥도 갔다. 갇힘에 쫓겨 노무현 변호사를 만났다. 둘은 서로가 서로를 쫓았고 서로가 서로한테 쫓겼다. 결국 오늘까지 왔다. 지금도 다를 게 없다. 과거의 운동권 동지들이 쫓고 있다. 과거의 혁명적 사고가 오늘의 나를 쫓고 있다. 이제는 야당도 쫓고 있다. 20년 전 부산역의 그 형사들처럼 말이다. 호철은 요즘 이런 말을 툭툭 던진다 한다.

"사육당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길러지는 거나 쫓기는 거나 같은 의미다. 그 때문에 느끼는 푸념처럼 들린다. 오고자 했던 길이 아니기 때문일 게다.

그러나 기왕에 쫓긴 거 끝까지 쫓기는 게 나을지 모른다. 새 길을 찾기엔 너무 먼 길을 왔다. 대신 과거 아닌 미래한테 쫓기길 바란다. 운동권 동지 아닌 우리 모두한테. 미움 아닌 사랑한테. 혁명 아닌 화해한테. 이념 아닌 공의(公義)한테 말이다. 그러다 어느 한순간 뒤를 돌아보면 비록 쫓겨왔지만 찾아온 길임을 알게 될 것이다.

이연홍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