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프와의 남북 레슬링|결승 대결 5분 내내 코치들 침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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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자유형 48kg급 결승이 벌어진 19일 프리에비라 실내 체육관은 미묘한 침묵이 흘렀다.
결승에서 맞붙게된 남과 북. 불과 한달 전에 탁구에서 단일 팀을 만들어 세계를 정복하고 축구 단일팀으로 세계 8강까지 진출하는 등 스포츠에서나마 한 민족임을 자랑했으나 레슬링 매트에서는 다시 적으로 만난 것이다.
그동안 함께 어울려 사진도 찍고 격려하던 남북한 젊은이들은 갑작스런 상황 변화를 소화시키지 못해 어색한 표정들이었다.
몇 년 전만 해도 서로 지지 않으려고 목이 터져라 응원을 보내던 이들 선수들. 그러나 오늘 이 자리에서는 누구도 내키지 않는 듯 했다.
경기를 지켜본 1천5백여 체코 관중들, 그리고 눈과 귀를 곤두세운 매스컴 관계자들도 숨을 죽였다.
경기에 나선 두 선수는 2분여 동안 긴장 탓인지 서로 방어에만 열중, 득점을 하지 못했다.
북한의 금이 먼저 허리 태클로 1점을 따자 이에 뒤질세라 박이 거푸 뒤집기를 성공시켜 4득점 앞서는 듯 했다.
그러나 금은 잇따라 태클로 반격, 4-4동점을 이루며 박진감 넘치는 경기가 계속됐다. 체코 관중들의 환호가 이어졌고 10초를 남긴 상태에서 금이 태클을 성공시켜 경기는 5-4로 끝났다.
5분 동안 나란히 앉아 경기를 지켜보던 17명의 남북한 선수들은 간혹 선수의 이름을 부르며 독려하긴 했으나 평소보다 훨씬 작은 목소리였다.
또 한국의 고진원 코치와 북한의 이호준 코치도 5분 내내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 미묘한 침묵, 그 동안 쌓인 정 때문에 마음놓고 응원하지도 못한 어색한 상황은 언제쯤 끝이 날것인가.
시상대 위에 나란히 선두 선수는 적이라기보다 차라리 형제 같기만 했다.
북한 팀의 김상준 단장은 『유일팀으로 만나지 못하고 또다시 이렇게 각각 출전하게돼 어색하다』고 말하고 『북한 팀이 금메달을 많이 따 반갑다』며 인사를 건넨 한국팀 이병순 단장의 손을 굳게 잡았다. <권오중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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