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검침원 송창재씨-"절전 아랑곳없는 가정 집 많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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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요즘 자기 집에서 한달에 전기를 얼마나 쓰는지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이렇게 반문하는 서울 역촌2동사무소 공과금담당(속칭 검침원) 송창재씨(35)는 최근 나라가 온통 전력부족으로 떠들썩한데 대해 나름대로 「그도 그럴 수밖에 없겠다」 싶은 심정이다.
송씨가 이 직업을 택한 80년대 초만 해도 계량기 검침을 나가면 끝난 뒤 집주인이 따라 나와 『얼마 나왔느냐』『많이 썼느냐』며 걱정스레 묻기도 해 『좀 절약해서 쓰라』고 충고해 주기도 했는데 요즘은 문만 열어 주고 쏙 들어가 버리기 일쑤라는 것이다. 이 만큼 절전에 관심이 적어졌으니 자기 집 전기사용량을 아는 사람이 많겠느냐는 얘기다.
집집을 돌며 계량기 보는 직업을 가진 탓에 송씨는 계량기 눈금뿐만 아니라 「절전 무관심」의 현장도 함께 보게 된다.
『대낮에도 형광등이 환한가 하면 TV나 선풍기가 빈 응접실에 켜져 있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전력 난의 「원흉」이라는 에어컨만 해도 얼마 전 전력예비율이 바닥을 맴돌아 대대적인 절전운동이 벌어졌을 때도 에어컨 있는 집은 하나같이 바람소리를 내더라며 송씨는 씁쓸히 웃었다.
잘살든 못살든 웬만하면 에어컨 정도는 갖추고 살게됐다지만 형편이 이러니 다방·식당만큼이나 전기를 쓰는 가정 집이 생겨나고 따라서 아무리 발전소를 세워도 전력 난이 쉽게 수그러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송씨가 한전 고용직으로 검침원 생활을 시작한 것은 지난 80년 전기·수도·도시가스 공과금 업무가 87년부터 한데 묶여 각 시·도·구·군으로 넘어가면서 86년11월 현재의 동사무소로 자리를 옮겼다.
한때 공과금을 여기 저기 나누어 거둘 때는 가짜검침원이 극성을 부려 도매금으로 곳곳에서 홀대를 받기도 했고 무심코 대문을 들어섰다 사나운 개에게 물린 일등이 아직도 생생히 송씨의 기억에 남아 있다.
그러나 공과금업무가 한데 모아지고 지난해부터는 이 일이 고용직에서 기능직10급 직으로 인정방게 돼 10년만에 정식공무원이 된 그는 『이제 한달 1천8백 개의 계량기를 돌아보는 일이 어렵고 힘들지만은 않다』고 웃음 지었다. 【글 홍승일 기자·사진 오동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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