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고민 안 한 판사 없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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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만난 이모 변호사의 목소리에서는 회한이 묻어났다. 서울중앙지법원장을 지내고 법무법인의 대표로 있는 그는 1977년 긴급조치 관련 판결을 내렸던 기억을 더듬었다.

"군 법무관을 마치고 판사로 임용된 첫해였을 겁니다. 당시 청주지법에 있었는데 긴급조치를 위반한 학생 사건을 맡았어요. 처벌 여부를 놓고 3명의 판사로 구성된 재판부 안에서 많이 싸웠던 것이 기억납니다."

당시 사표 쓸 생각도 했다. 하지만 "판사가 된 지 1년밖에 안 됐는데…"라는 생각에 결심이 서지 않았다. "수많은 번민의 나날이었다"고 표현했다.

"판사들끼리 모여 술도 많이 먹었습니다. 상을 주먹으로 내리치면서 '이게 법이냐, 내가 판사냐'하며 자조하곤 했어요. 당시 고민 안 한 판사 없고, 후회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과거사위의 판결과 실명 공개로 인한 파장을 우려했다. 개인을 매도하는 인적 청산으로 이어질 것 같은 분위기 때문이다.

"현재는 정치 상황과 교차되는 것이 문제입니다.(긴급조치 판결에 참여한) 현직 법관이 물러나야 한다는 식으로 여론몰이가 되면 30여 년간 수많은 번민 끝에 판결을 내려온 판사의 모든 공을 하나의 과오로 평가절하하는 일이 됩니다."

백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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