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폭 … 오해와 진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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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친구' '조폭마누라' '두사부일체' '가문의 영광' '예의 없는 것들' '거룩한 계보'….

최근 수년간 조폭을 소재로 삼은 영화들이 유행처럼 등장하고 있다. 이들 영화에서 조폭은 보스의 명령이라면 목숨까지 바치는 '멋진 인간형'으로 묘사된다. 조폭이 현실의 부조리를 응징하는 데 앞장서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은 영화와 딴판이란 게 범죄전문가들의 얘기다.

"요즘에는 형님들이 동생들이라고 해서 업소를 그냥 물려 주는 것은 없다. 조직에서도 돈 계산은 철저하다."(30대 행동대장)

"동생들이 잘못했다고 함부로 때리면 검찰에 나가 불어 버리기도 한다. 돈이 없으면 형님 대우 못 받는 실정이다."(20대 행동대원)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심층면접에 참여한 조직폭력배 중 29명은 영화 등을 통해 널리 알려진 '조직=의리'라는 공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형님들 빨래, 식사 준비 등으로 고생하고 많이 맞았지만 요즘 돈에 눈뜬 어린 동생들은 다르다"는 것이다.

'유흥업소에서만 기생하는 조폭'도 과거에나 통하던 얘기다. 서울에서 행동대원급으로 통하는 A씨(30대)는 새벽 3~8시까지는 청과물 유통업,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는 조직이 운영하는 건설회사 과장, 저녁 6시 이후에는 나이트클럽 고문으로 일한다고 밝혔다. "같은 조직원들도 유흥업소.식당.청과상.사채업.컨설팅.유통업 등으로 자신이 맞는 분야를 특성화시켜 사업을 한다. 조직원 중 종교계에 진출한 목사도 있다"는 것이 A씨의 말이다.

마약 거래를 피하려는 경향도 있다. 충청 지역에서 활동했던 20대 행동대원은 "조직을 키우기 위해 자금을 확보하려는 신흥조직의 경우 마약에 손을 대는 경우가 있지만 큰 조직은 마약에 손대면 법망에 걸리기 쉬워 손을 대지 않는다"고 전했다.

다른 조직 간 이권 다툼으로 인한 충돌인 '전쟁'도 거의 없다는 게 조직원들의 말이다. 경기도 지역의 행동대원인 B씨(30대)는 "1996년 OO파와 전쟁한 이후 한 번도 싸워 본 적 없다"고 밝혔다. "옛날처럼 '연장'(흉기)으로 하는 시대가 아니다. 그에 따른 대가가 너무 크고 조폭도 계산적이기 때문에 웬만한 경우가 아니면 폭력을 쓰지 않는다"(서울 지역 40대 행동대원)는 것이다.

백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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