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책임도 반성도 없는 탈당은 속임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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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열린우리당은 어제 중앙위원회에서 기초당원제를 도입하는 당헌 개정안을 채택했다. 이로써 2.14 전당대회는 예정대로 치러질 가능성이 커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탈당 사태까지 막아낼 것 같지는 않다. 열린우리당의 탈당 움직임은 특정 계파의 차원을 넘어섰다. 이념이나 노선, 노무현 대통령과의 친소(親疏)와도 관계없는 전반적인 현상이다. '침몰하는 배를 빠져나가려는 쥐떼'라는 표현이 실감 난다.

아무리 정치가 천박해져도 정치인의 행동에는 명분이 있어야 한다. 명분을 못 챙기면 시장의 장사치나 사기꾼과 다름없다. 최근 열린우리당을 탈당한 의원들이 그 꼴이다. 이들은 열린우리당이 민심으로부터 외면당했다고 인정하면서도 자신의 책임에 대해서는 반성도 고백도 없다. 그런 상황은 누가 만든 것인가. 바로 자기 자신이 지난 4년 동안 저질러 놓은 결과가 아닌가.

정치인이라면 임기 중 성실하게 활동하고, 그 결과에 대해 다음 선거에서 유권자의 심판을 구하는 것이 도리다. 탈당하더라도 자신의 과오에 대해서는 먼저 철저히 반성부터 해야 한다. 특히 천정배 의원은 열린우리당을 만든 주역이다. 원내대표로 국회운영을 주도하고, 법무부 장관으로서 내치의 핵심을 담당했다. 그런 그가 이제 와서 누구에게 책임을 돌릴 수 있겠는가.

더구나 이들의 설명을 들으면 왜 탈당하는 것이며, 탈당해서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도 알 수 없다. 개혁을 내세우기도 하고, 실용주의를 내세우기도 하지만 구체적 실체를 밝힌 사람은 없다. 개혁이라면 열린우리당이 전매특허처럼 외쳐 온 것인데 또 어떤 다른 개혁을 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탈당을 위한 어설픈 변명으로밖에 안 들린다.

이들은 개혁 세력 통합을 주장한다. 다수 세력이 탈당해 다시 합칠 것이라면 왜 나가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러니 4년 동안 망쳐 놓은 국정 운영의 책임을 벗어 놓으려는 화장이고, 차기 정권을 창출하기 위한 속임수라 의심하게 된다. 책임 있는 정치인이라면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는 스스로 책임질 줄 알아야 한다.

◆바로잡습니다◆

정치인이 명분을 못 챙기면 '시장의 장사치와 다름 없다'고 표현한 것은 정치인이 상인을 포함한 일반 서민보다 훨씬 엄격한 도덕성을 갖춰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이 표현이 상업에 종사하시는 분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오해를 불러일으킨 점 사과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