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격차효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다수의 청중을 상대로 한 강연이든 단 둘만의 대화에서든 내용이 뻔한 얘기는 별다른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서로 다 알고 있는 스토리를 계속하면 듣는 사람의 집중력이 떨어지고 급기야 무관심과 거부감을 자아낸다. 폭소를 자아내는 코미디를 반복해 보면 점점 웃음의 강도가 떨어지다가 어느 순간 짜증으로 바뀐다. 이런 식의 강연이나 대화에선 소통은커녕 최소한의 의사전달도 불가능하다.

청중과 대화 상대방의 귀를 붙잡으려면 소재와 전달 방식이 새로워야 한다. 듣는 쪽에선 자신이 모르는 주제나 주장에 아무래도 관심을 더 기울일 수밖에 없다. 구체적인 사례와 신선한 비유를 동원하면 메시지의 전달력은 더욱 커진다. 남을 설득할 때도 마찬가지다. 서로의 입장이 어느 정도 달라야 집중력이 커지고, 소통의 깊이도 더해진다. 입장이 완전히 똑같다면 설득하고 말고 할 것도 없다.

커뮤니케이션 이론에선 이를 격차효과(Discrepancy Effect) 또는 상위(相違)효과라고 한다.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 할 때 그것을 받아들이는 수신자의 생각과 다를수록 수신자에 대한 수용 압력이 커지고, 결과적으로 전달효과도 커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입장 차이가 웬만해야 대화도 하고 설득도 하는 법인데, 그 격차가 너무 벌어진 상태에선 대화고 설득이고 간에 도무지 먹혀들지 않는다. 워낙 생뚱맞거나,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파격적인 제안은 전달력이 급격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전혀 들으려고 하지 않는데 일방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강요해서는 자칫 소통의 단절과 극단적인 거부감이라는 역효과만 빚는다. 남을 설득하려면 상대방의 평소 태도와 정보 수준을 감안해 적당히 차이가 나는 메시지를 던져야 의사소통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정치판에선 간간이 '폭탄 선언'이나 '깜짝쇼'가 국민의 이목을 사로잡는다. 소재의 신선함과 파격적인 전달방식이 먹히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한계는 있다.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국민의 생각과 적당히 달라야지 아주 동떨어져서는 곤란하다. 파격도 적당히 해야지 너무 잦으면 식상할 수밖에 없다.

국민과의 직접 소통을 강조해 온 노무현 대통령은 개헌이라는 파격적인 소재를 들고 올 들어 벌써 네 번이나 지상파 TV에 등장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국민의 반응은 갈수록 썰렁하다. 개헌 제안이 국민의 생각과 격차가 너무 컸던 것일까, 아니면 잦은 파격에 식상해 등을 돌린 것일까.

김종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