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원로 학자들의 新행정수도 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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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신행정수도를 충청권에 건설하겠다는 정부 계획에 대해 국내 도시계획 원로학자들이 반대성명을 냈다. 원로들은 서울 인구 50만명을 줄이는 데 45조원을 쓰는 것은 명분이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또 행정수도 이전을 공약으로 내건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된 것이 이 사안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행정수도 이전을 추진하면서 제대로 된 여론수렴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에 원로들의 고언(苦言)은 설득력을 갖는다. 국가 백년대계를 좌우하는 수도 이전 작업이 전문가와 국민이 충분히 따져볼 겨를도 없이 일사천리로 추진돼서야 되겠는가.

이전 규모와 비용도 시간이 갈수록 달라지고 있다. 대선기간 중 민주당은 4조~6조원이면 이전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제와서는 45조원으로 늘어났고, 전문가들은 1백조원도 넘을 것이라고 한다. 그 돈을 행정수도 이전하는 데 쓸 것이 아니라 지방에 직접 투자하는 것이 지역 균형발전을 위해서도 효율적이라는 목소리에도 귀를 귀울여야 한다. 행정수도를 충청권에 건설하면 수도권이 충청권으로 확장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으며 이는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명분과 어긋난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정부는 분명히 입장을 밝혀야 한다.

지금 충청권에서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곳곳에서 행정수도 유치를 내걸고 지역주민들의 민심을 얻기 위한 후보자들의 경쟁이 치열하다고 한다. 지난 대선 때 문제점을 지적했던 한나라당조차 이 지역 눈치를 보며 굳이 반대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라니 참으로 한심하다. 중대한 국가정책에 대해 이런 식으로 판단을 하니 추진하는 집권세력보다 방조하는 야당이 오히려 한심스럽다. 오죽 답답하면 학계 원로들이 성명을 냈겠는가. 행정수도 이전이 정략의 산물이 돼서는 안 된다. 정부는 이제부터라도 백지화 가능성까지 열어놓고 국민 여론 수렴에 들어가야 한다. 필요하다면 내년 4월 이후 국민투표에 부치는 것도 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