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지은 건물 헐기로 힘들다-신도시 「불량」철거 맡은 성도건설 도문극부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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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철거 전문업체인 성도건설 현장책임자 도문극씨(44·공무부장)는 26년째 건물파괴만 전문으로 해오고 있지만 최근 불량레미콘 사용으로 물의를 빚고 있는 평촌·산본 신도시 아파트철거작업만큼 힘든 때는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만큼 부담이 큰 탓도 있었지만 이미 신축중인 건물을 다치지 않고 불량시공 부분만 헐어내야 했기 때문이다.
도씨는 『진동으로 인한 안전도 하락을 우려, 절단기로 문제부분을 잘라낸 후 콘크리트 파 쇄기로 철거를 무사히 끝냈다』며 『철거 밑부분은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는『건물을 짓는 것보다 허무는 것이 더 어렵다』고 말했다. 신축은 설계도면대로 공사하면 되지만 철거는 소음·진동·분진을 최소화 해야하고 건물이 엉뚱한 방향으로 넘어져 뜻밖의 사고를 당하지 않게 치밀하게 사전에 공사계획을 짜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건물 밀집지역인 시내 중심가의 경우 인접건물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는게 가장 힘들다고 했다. 작업 특성상 항상 안전사고위험이 도사리고 있어 도씨는 공사가 끝날 때까지 긴장감을 풀 수 없다고 말했다.
더욱이 부실 공사한 건축물의 경우 철거작업 때 안전사고 위험이 더 높다고 지적했다. 견고하게 지은 건물은 잘못 부숴도 그대로 서있지만 부실 공사의 경우 잘못 건드리면 방향을 종잡을 수없이 무너져 내린다는 것이다.
도씨는 그 대표적인 예로 88년 철거작업을 했던 와우아파트를 들었다.
철근도 규격에 미달된 것을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양도 적었고 시멘트도 배합비율을 지키지 않아 건물 곳곳이 심하게 균열이 가 있었다.
이 때문에 해머로 벽을 치면 모래로 지은 집처럼 우수수 허물어져 건물이 어느 쪽으로 넘어갈지 예측할 수 없어 철거에 애를 먹었다고 했다.
18세 때부터 해머 하나로 철거일을 시작한 도씨는 공사판에서 잔뼈가 굵었다. 그가 그 동안 부순 집만 해도 판잣집에서 고층 빌딩까지 수백채가 넘는다. 재개발 철거·고층건물 해체 등의 파괴 현장에는 꼭 그가 있다. 그러나 도씨는 자신이 하는 파괴는『건설을 위한 파괴』라고 주장한다.
현재 국내 철거 전문업체는 허가업소만 1백여개가 난립해 있지만 대부분 영세하다. 심지어 장비라고는 해머뿐인 업체도 많은 실정이다. 기술수준도 일부업체를 제외하고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낮다. 그 동안 산업화과정에서 쉬지 않고 건설만 했지 철거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탓이다.
도씨는『최근 들어 60∼70년대 지었던 건물의 철거가 활발해지면서 이제 국내 건설업체도 철거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며 『안전하고 이웃 건물에 피해가 가지 않는 효과적인 철거공법의 연구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정재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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