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여성들 가정 중시 풍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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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남녀평등을 외치며 30년 가까이 끈질긴 투쟁(?)을 벌여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다수 미국 여성들이 직장에서 임금·승진 기회 등 모든 면에서 명백한 차별을 받고 있음이 최근 미 노동부의 실태조사를 통해 밝혀졌다.
이와 관련, 미국의 신진 여권운동가들은 지금까지 주로 「남성과 동등하게 일할 권리」「직장에서 남성과 마찬가지로 높은 위치에 오를 것」 등을 목표로 진행돼온 여권운동 자체에 대 방향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들 주장의 요지는 여성들이 남성위주의 법·가치체계 하에서 남성들이 만들어 놓은 목표를 따라잡는데 급급할게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평등을 획득하자는 것.
이들이 말하는 진정한 평등이란 남녀의 차이가 동등하게 존중되는 풍토, 즉 아이를 기르고 가정을 돌보는 여성의 전통적 역할의 중요성이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 분위기를 의미한다.
실제로 최근 많은 미국여성들이 육아 등 가정생활을 포기해가면서 직장일에 매달러 많은 임금, 높운 사회적 지위를 추구하는데 대해 회의를 느끼고 있음이 드러났다.
지난해 미국의 한 여론조사기관이 1천여명의 전문직 여성들을 대상으로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들 중 82%의 여성들이 임금·승진기회 등에서 좀 뒤처지더라도 더 많은 시간을 가정에 할애할 수 있는 직업을 택하고 싶다고 응답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만도 3백만명 이상의 여성들이 많은 근무시간을 요하는 직장의 고위간부직을 그만두고 보다 융통성 있게 자기 시간을 활용하기 위해 자신들만의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같이 가정생활을 중시하는 추세가 여성들에게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뒤퐁사의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56%의 미국 남성 직장인들이 가족과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직업을 갖고 싶다고 응답했다는 것. 이는 5년전의 37%에 비해 크게 늘어난 숫자다.
따라서 이러한 추세는 사회가 고도로 산업화해가며 각 개인들이 자기 자신, 가정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 시대 조류에 따른, 보편적 현상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초창기 여권운동은 여성들이 육아·살림에만 종속되는걸 막기 위해 밖에 나가 남성과 동등하게 일할 것을 강조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 점차적으로 가정생활이 중시되는 풍토가 자리잡고 있으므로 여성들도 일·가정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때가 되었다.』 여권운동가의 선두격인 베티 프리던의 말이다. <신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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