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공단 부정과 제도적 허점(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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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28일 치안본부가 발표한 국민연금관리공단 부정사건은 현행 감정제도가 지닌 허점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
현행 제도상으로는 공공기관의 건물이나 토지매입등의 경우에 있어서도 그 보상을 위한 부동산평가는 민간평가업자들만이 맡을 수 있게 되어 있다. 따라서 부정을 저지르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민간평가업자와 짜고 얼마든지 평가액을 조작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번 사건이 바로 그러한 대표적인 경우다.
국가 토지정책의 근본이 되는 부동산평가가 민간업자에게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게 되어 있다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아직 공적 평가기관이 없는 상황이라면 또 모르되 엄연히 정부가 출자한 공적 기관인 한국감정원이 있으면서도 그 기관이 1개평가업자의 지위밖에 누리지 못해 공공 사업에서조차 배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은 분명히 제도적·법적인 허점인 것이다.
비단 이번 사건에서와 같은 공공용건물 매입과정에서의 부정을 방지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앞으로 사회간접시설 확충을 위한 토지매입 등 공공사업시행에 있어서의 국고손실방지와 부동산 관련세금의 적정한 책정에 의한 조세저항 방지를 위해서도 공신력있는 공적 평가기관의 필요성은 절대적으로 요청되고 있는 상황이다.
만약 현행 제도대로 둔다면 토지공개념 확대를 위해 마련된 공시지가도 지역마다,필지마다 다르고 또 그 평가액도 정확하지 못해 앞으로 엄청난 민원이 발생할 것이다. 또 국토개발을 위한 부동산의 수용·처분·보상등에 있어서도 예산의 과다집행 혹은 국고손실등 국가 경제적 손실이 초래될 가능성이 너무도 큰 것이다.
따라서 당국은 이번 국민연금관리공단의 부정사건을 계기로 현행 감정제도가 지닌 허점을 서둘러 보완해야 한다. 이번 사건을 그저 관련자의 도덕성 문제로만 치부해서는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 제도적·법적으로 부정의 소지가 남아 있는 한 앞으로도 얼마든지 이번 사건과 유사한 사건이 발생할 것이다.
현행 제도상의 허점을 보완하는 길은 국가가 출자한 공적 기관인 한국 감정원의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다. 민간업자를 배제하고 전적으로 권능을 한국감정원에 맡길 필요까지는 없을 것이다. 단지 보상평가,공시지가의 산정등 공적업무에는 한국감정원이 민간평가업자와 함께 복수로 참여케 해서 민간업자의 불공정한 평가를 견제하게 해 적정한 평가가 이루어지도록 하면 되는 것이다.
이는 민간평가업자의 존립기반을 크게 제약하는 것 같지만 민간평가업자는 공적업무 외에도 일반부동산을 평가할 수 있는 자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우리가 공적평가기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공공업무가 낭비없이 효율적으로 집행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우리도 민간자율의 큰 흐름 자체는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국가토지정책의 기본이 되는 감정업무에는 일정한 수준의 국가감독과 지도기능은 필수적이라는 점에서 공적평가기관은 기능강화를 주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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