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9선언 실천 더 과감해야/고영복 서울대교수 특별기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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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갈등해소에 많은 노력 필요
6월29일 하면 곧 6·29선언이 생각난다. 그것은 6·29선언이 우리사회의 변화를 위한 하나의 전환점을 이루었고 아직도 변화를 재촉하는 준거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6·29선언이 있은지 벌써 4년이 지나가고 있다. 그리고 그동안 많은 정치적 변화도 있었다. 어떻게 보면 지난 4년동안을 이 6·29선언이 이끌어 왔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오늘의 체제존립을 위한 명분처럼 되어 온 것도 사실이다.
오늘의 민자당을 있게 한 것도 6·29선언 때문이고 야당들의 투쟁과 공격의 명분도 6·29선언을 둘러싸고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6·29선언은 과연 실천되고 있는가. 아마도 여당은 실현되고 있다고 볼 것이고 야당은 실현되고 있지 않다고 볼 것이다. 이것은 민주화에 대한 기대의 차이에서 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기득권을 고수하는 입장에서 보면 많은 양보가 있었다고 말할 것이고 비판세력의 시각에서 보면 6·29선언으로 속임수를 당했다고 말할 것이다.
여당의 입장에서는 지방의회의 선거에서 대승했으니 국민으로부터 긍정적 신임을 받았다고 자부할 것이고,야당에서는 권력의 독점과 과거의 습성으로 회귀하려는 증후를 경고할는지 모른다.
크게 보면 민주화작업이 조금씩 진척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지방의회도 생겼고 정치활동의 자유가 넓어졌고 언론의 자율성도 많이 확보되고 있다. 그러나 바람직한 사회변화라는 기준에서 보면 6·29정신이 딜레마에 빠지고 있는 면이 적지 않다고 본다.
첫째로 제도권과 재야세력의 대립현상이다. 제도권에 진입한 사람들은 새로운 보수진영을 구성하고 있고 제도권 밖에 있는 사람들은 위험세력으로 기피되고 있다. 그리하여 사회는 다시 지배세력과 피지배력으로 양분되고 지배세력 안에서는 민주화의 혜택이 주어지고 있지만 피지배세력에 대해서는 동참을 거부하는 정치적 경계를 설정하고 있다.
이것이 노사갈등이나 학생운동을 유발시키는 이유이기도 하지만 결과적으로 6·29선언이 일부 국민을 자기편으로 끌어 들이고 일정 수준의 지지층을 확보하고서는 이제는 반대세력을 반민주세력으로 낙인찍고 고립화시키려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6·29선언이 정권의 연장을 위한 가면극이냐,그렇지 않으면 개혁을 위한 변신이냐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평가기준이 된다고 본다. 다시 말하자면 민주화 작업이 일단 정지하느냐,그렇지 않으면 일보전진하느냐의 갈림길에서 주사위를 던질 수 있는 셈이 되고 있는 것이다.
둘째로 권위주의의 재등장이다.
민주화를 위해 권위주의를 청산하겠다고 공언한 집권세력이 권위주의를 포기하고서는 정권유지가 어렵다는 입장으로 후퇴하고 있는 조짐이 보인다. 공안정국으로의 유도,정당공천의 비민주성,막대한 선거자금의 살포 등은 권위주의를 조작하는 증후로 볼 수 있다. 특히 지방의회의 견제기능 약화현상은 정권유지의 장식물로 전락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민주화는 생각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제도적 장치가 있고 상호 견제하는 세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견제세력이 될 수 있는 힘의 근원을 봉쇄내지 차단하는 결과들은 반권위주의적인 압력원을 무력화시키는 의미가 있고 또한 권력이 독주를 초래할 유혹을 기르고 있는 것이다.
셋째로 안정기조의 남용이다.
사람은 누구나 안정을 바란다. 그러나 안정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보수화를 초래한다. 구조적으로 안정된 층이 압도적으로 다수라면 보수화는 그래도 의미가 있다. 그러나 구조적 안정없이 의식의 안정만을 강조하면 허위의식이 날조된다. 우리사회에는 현실과 의식의 괴리가 생기고 있다. 현실은 결코 안정되고 있지 않은데도 의식은 안정쪽으로 이끌어 가고 있다.
우리나라엔 많은 불균형이 있다. 계층간의 불균형,도농간의 불균형,지역간의 불균형,그리고 세대나 직업간의 불균형도 있다. 이것은 변혁을 요구하고 있는 지대들이다.
안정에로의 희구는 이런 것을 방치하거나 묵살할 위험이 있는데도 안정의 이름으로 은폐될 수 있는 함정이 있다. 끊임없는 비판과 도전이 없이는 전진의 동력은 죽고 만다. 발전이냐 저발전이냐의 갈림길에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6·29선언 정신의 퇴색을 걱정하게 된다. 6·29정신의 핵심은 갈등의 조화에 있었다고 본다. 그러나 새로운 갈등이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6·29정신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그것이 현실을 이끌어온 힘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정지하는 것을 바라지는 않는다. 더 많은 것을 끌어낼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궁극적인 판가름은 앞으로의 국회의원선거와 대통령선거에서 결판날는지 모르나 우리가 관심이 가는 것은 정권의 향배가 아니라 실질적 성과다. 6·29정신은 좀더 과감히 실천되어야 한다. 또한 국민들은 그렇게 하도록 채찔질해야 한다고 본다. 그렇지 않으면 모처럼 싹튼 발전의 희망을 적당히 얼버무릴 가능성이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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