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재즈 동반자로 만나 처남·매부 緣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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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전생부터 질긴 인연이 있었나 봐요. 이역만리 떨어진 땅에서 태어났으면서도 서로 만나 함께 음악을 하는 것도 신기한데 처남.매부의 연까지 맺게 되었으니."

지난 14일 낙엽이 쌓인 전북대 삼성문화관 주변은 늦가을 분위기를 조롱이라도 하듯 폭발적인 리듬과 멜로디가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이날 '재즈 열기(Jazz Fever)'라는 이름의 공연을 한 백제예술대 실용음악학과 정재열(35).벤 볼(31)교수. 국내 최고의 재즈 뮤지션으로 평가받는 이들은 드라마 같은 인연의 주인공이다.

한국과 캐나다에서 태어나 20대 초반에 처음 만난 둘은 10년 가까이 바늘과 실처럼 붙어다니며 음악활동을 함께 하고 있다. 이들은 재즈 본고장인 미국에서도 웬만한 연주자는 흉내못낼 정도의 현란한 테크닉을 구사한다. 그동안 앨범을 4장이나 냈으며, 특히 '야타 재즈 밴드'를 이끌면서 국내 최초로 클럽이 아닌 소극장에서 1백20주 동안 정기 재즈 공연을 펼치는 기록을 세웠다.

한국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16세 때 가족을 따라 캐나다로 이민간 정교수는 1990년 벤과 인연을 맺었다. 토론토대학에서 경제학을 배우다 재즈 기타를 하고 싶어 재입학한 험블칼리지에서 재즈드럼을 익히던 벤을 만난 것이다. 그때만 해도 서로의 재능은 인정했지만 그냥 얼굴만 아는 사이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한 정교수는 95년 "서울에서 같이 연주 활동을 하자"며 벤을 초청했다. 벤은 2년 뒤 정교수의 외사촌 여동생과 덜컥 결혼했다.

"제 형님의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외사촌 여동생이 피아노 치는 모습을 보고 첫눈에 반한거죠. 그때부터 은밀히 작업(?)에 들어갔나봐요. 추운 겨울날에도 새벽같이 일어나 찬물로 세수하고 외삼촌이 목사님으로 계시는 교회에 아침 예배를 다니는 등 엄청나게 정성을 쏟더라고요."

정교수는 둘이 연애하는 동안 '혹시 불똥이 튈까봐' 친척들이 물어봐도 전혀 모른 척하며 침묵을 지켰다. 벤이 천신만고 끝에 97년 결혼에 골인하면서 두 사람은 처남.매부 사이가 됐다. 인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정교수가 벤의 결혼식장에서 부케를 받은 사촌여동생 친구와 사랑에 빠지고, 이들도 1년 뒤 혼인했다.

벤은 정교수보다 훨씬 한국적이다. 보신탕.추어탕을 '넘버원'이라며 치켜세우는가 하면 삼겹살에 생마늘을 특히 좋아한다. 입에서 마늘 냄새가 난다며 정교수가 피할 정도란다. 최근에는 국악 리듬에 푹 빠져 장구를 배우고 있다.

최근 두 사람은 서로의 관계를 빗댄 '사돈'이라는 뜻의 '디 인 로(The In-Law)'라는 앨범을 발표했다. 이 앨범은 기타와 드럼만으로 연주돼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그 유례를 찾기 힘든 앨범이다.

"공연장에서 기타와 드럼이 어울려 멋진 선율을 만들어 내듯이 서로에게 풍부한 영감을 주고 발전의 모티브 역할을 하는 불빛 같은 존재가 됐으면 합니다."

전주=장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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