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민당식」총재 재신임/전영기 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김대중 신민당총재가 24일 당무회의투표를 거쳐 「선거패배에 대한 김총재의 책임을 물을 필요가 없다」는 신임을 얻었다.
56명의 당무위원중 51명이 찬성하고 5명이 기권했다. 표결은 기립투표로 했다.
김총재는 이에 앞서 10시간 가까운 마라톤회의에서 무려 31명의 의원으로부터 패인분석과 자신의 거취문제,당의 진로등에 대한 의견을 경청하고 신임투표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일단 『당원으로부터 절대다수의 안정적 지지를 얻지 못하고 무슨 대통령후보가 되겠다고 하겠느냐』며 재신임을 묻기위한 임시전당대회를 소집하겠다고 밝혔었다.
이에 대해 다수 당무위원들은 『전당대회때까지 가면 퇴진문제를 둘러싸고 불필요한 잡음이 무성해질 것』이라고 반대했다.
전당대회 수임기구인 이날 당무회의에서 당장 총재인책문제를 다루자는 말이었다.
자신의 거취문제가 쟁점이 된 회의를 김총재스스로 주재하면서 「참석자들의 중의에 따라」두가지 안건을 정리했다.
그는 ▲전당대회를 열어 총재책임을 물을 것인지 ▲총재에게 책임을 물을 필요가 없는지를 의제로 상정하고 기립투표방식을 선택,압도적 다수로 신임을 얻었다.
그러면 김총재의 책임문제는 이제 깨끗하게 정리된 것일까.
56명의 당무위원 바깥에 있는 유권자들은 물론 당직자들 상당수 조차도 이같은 전격적인 총재신임에 얼떨떨한 눈치였다.
사전에 예정된 각본에 우롱당한 느낌도 든다. 우선 선거참패로 정당의 존재근거에 대한 의문이 광범위하게 퍼진 가운데 제기된 김총재의 신임문제를 충성심으로 뭉쳐진 당간부들에 의해서 「결재」받을 수 있는 일인가.
김총재는 『발언자 31명중 나의 퇴진을 거론하는 사람은 두명밖에 되지 않는다』고 퇴진불가의 이유를 설명했지만 신민당을 거부한 유권자에 대한 책임은 누가 어떻게 질 것인가.
많은 사람들은 선거후 4일만에 「자기들끼리 모여」선거패배의 책임을 물을 필요가 없다고 한 전격결정보다 당내외에 무성한 「독한 의견」들을 들어가면서 고민하는 모습을 보고싶어 한다.
이제 신민당은 유권자에 대해 아무도 책임질 필요가 없게 됐으므로 앞으로도 「신민당식」당운영을 하게될 것 같아 안타깝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