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는 수사다/선거사범처리·대필 시비를 보고(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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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오늘날 우리 사회가 혼돈과 불안정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원인의 하나는 법이 공정히 집행되지도 않고 법의 권위가 존중되지도 않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는 법에 의해 조직된 사회인데 법이 이렇듯 있으나마나한 예가 쌓인다면 사회에 혼란과 불안정이 뒤따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특히 개탄스러운 것은 공정한 법집행의 책임과 권한을 지니고 있는 당국 스스로도 필요에 따라 법의 권위를 무너뜨리고 있다는 점이다. 좋은 보기가 뇌물공천의원에 대한 내사를 서둘러 종결키로 방침을 세운 검찰의 태도다. 검찰은 공천과 관련,뇌물을 받은 혐의로 내사를 벌여온 여야국회의원 20여명에 대해 「구체적인 증거와 정보를 찾지 못해 더 이상 내사를 벌이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선거후 소환방침까지 밝혔던 신민당의 두 의원과 지구당위원장등 3명에 대해서도 불구속입건키로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당장이라도 구속할듯 서슬이 퍼렇던 선거기간중의 태도와는 너무도 판이한 것이다. 검찰부터가 이렇듯 법집행을 자의적으로 하면서 그 누구에게 법의 준수와 존중을 요구할 수 있을 것인가.
들리는 이야기로는 검찰의 태도변화에는 이번 선거에서 야당이 참패한 마당에 야당의원을 철저히 수사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정치권의 요청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정치적 시각에서만 보면 이해할 만한 측면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역시 법은 법이고 수사는 수사다. 정치적 이유로 해서 법의 공정성이 해쳐져서는 안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선거 때마다 과열과 혼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당국의 법집행이 공정성과 엄격성을 잃고 있는데 그 큰 원인이 있다. 당국은 선거때마다 불법 선거운동을 엄단한다고 공언을 하면서도 실제로는 그 뒤처리를 흐지부지해왔다. 공선협의 불만도 여기서 나오고 있다.
법의 권위가 존중되고 법치주의가 확립되려면 우선 당국부터가 법집행에 있어서 공정성과 형평성의 모범을 보여 주어야 한다.
그러나 법의 권위를 무너뜨리고 있는 것은 비단 당국만이 아니다. 법의 권위가 무너지고 그래서 법을 지킬 필요성을 느끼지 않고 그것이 법의 권위를 더욱 유린해 법이 태연히 무시되는 악순환이 우리 사회 도처에서 발견되고 있다.
최근의 명동성당사태도 바로 그런 것의 하나다. 유서대필 사건만 해도 그렇다. 검찰의 주장이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는 차후에 가릴 일이고 그에 관계없이 우선 법질서 자체는 존중했어야 할 일이 아니었는가. 그런데 구속영장이 발부된 당사자가 일방적 주장만 내세워 40일 가까이나 법의 권위,국가의 형사권을 무시하고 수사에 응하지 않은 것은 용납될 수 없다.
바로 그러한 그 동안의 자세때문에 연행된후 행사하고 있다는 묵비권의 도덕적 정당성도 크게 약화되었다고 본다. 묵비권은 피의자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행사할 수 있는 권리이나 그동안의 행동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 도덕적 정당성에 마저 회의를 느끼고 있는 분위기인 것이다.
법질서를 지키려는 노력 없이는 우리사회는 앞으로도 혼란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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