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감정 발목잡힌 두 김씨/문일현 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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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민자당 김영삼 대표최고위원의 최근 호남방문은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87년 광주역앞의 대통령선거 유세때 청중들로부터 날아든 돌을 피해 유세는 시작하지도 못한채 쫓기듯 광주를 빠져나가야만 했던 쓰라린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김대표로서도 감회가 남달랐을 것이다.
김대표는 2년전 수해지역 시찰차 잠깐 들른 적은 있으나 정치적 행사로 호남지역을 찾기는 대선유세 이후 4년만의 일이며 특히 3당통합으로 집권여당의 대표가 되고 난 이후 처음으로 광주를 방문했기 때문이다.
현지에서는 득표에 도움이 안된다는 분위기를 들어 방문에 반대한 것을 김대표가 강행했다.
이러한 사정때문인지 김대표는 말한마디 한마디에 신중을 기하는 모습이 역력했고 행사를 준비하는 주최측 또한 김대표 주변에 「철통같은」 경비망을 펴는가 하면 이동시에도 도심을 피하고 외곽도로를 이용하는 「세심한 배려」를 했다.
김대표는 『우리도 지난날의 반목과 대립에서 벗어나 화해와 대화로써 문제를 풀어야 한다』며 지역감정 타파를 강도높게 역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지 당원들은 김대표의 방문이 득표에 별 도움이 되질 않고 오히려 역효과가 날지 걱정된다고 불평했다.
그런 방문을 굳이 강행한 이유는 무엇일까. 일부에서는 제2의 정원식 총리서리사건 같은 것을 걱정하기도 했다. 그런 탓인지 김대중 신민당 총재는 김대표 방문전에 『광주시민이 잘 대해줘야 한다』고 미리 걱정까지 했다. 실제로 무슨 불상사라도 일어난다면 그것은 그 누구에게도 좋지않은 영향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걱정을 해야하는 까닭이 해소되지 않는 지역감정 때문이고 그 지역감정의 골을 깊이 판 장본인들이 바로 두 김씨라는 것은 참으로 아이로니컬하기도 하다. 그들은 그들의 정치적 야망을 달성하는 수단으로 지역감정을 동원한 결과 이제와서 오히려 거기에 발목을 잡혀있는 것이다.
김대표의 광주방문 강행이나,김총재의 걱정이 모두 두 김씨 대결구도를 겨냥한 사전포석이라는 추측도 없지 않다.
그것이 한갓 추측인지는 몰라도 그런 정치적 야심때문에 이미 깊이 팬 골을 더 깊이 파는 일은 없어야할 것이다.<광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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