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지진파' 놓친 방송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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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반도는 지진 안전지대'라는 인식이 깔려 있는 탓일까. 20일 발생한 강원도 평창 지진을 취재하면서 우리나라 곳곳이 '지진에 관한 한 왕초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동안 지진 피해를 줄이기 위한 예산은 소방방재청에 거의 '한푼'도 배정되지 않았으며, 한반도 단층 지질 조사는 거의 초보 수준이었다. 전국을 대상으로 대규모 단층 조사를 한 지가 수십 년이 지난 현실에서 강원도 평창 지진 발생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할 전문가를 기대하는 건 무리다. 그나마 정부가 23일 국무회의에 '지진재해대책법'을 상정하려 한다는 소식이 다소 위안을 준다.

지진은 어느날 느닷없이 발생했다 사라진다. 현대 첨단 과학으로도 여전히 사전 예보조차 할 수 없는 거의 유일한 자연재해다. 피해 규모는 그동안 일어났던 지진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누구나 알 수 있다. 지진의 피해를 줄일 수 있는 길은 지진이 났을 때 재빠르게 대처하고, 평상시에는 각종 건축물이나 기간 시설에 내진 설계를 하는 게 상책이다. 우리나라 사정은 어떤가. 지진 방송을 의무적으로 하도록 돼 있는 주요 방송사가 평창 지진을 방송하기 시작한 것은 지진 발생 12분 뒤다. 전후 사정이야 어떻든 상당수 국민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른 채 그렇게 '긴' 시간이 지나서야 발생 사실을 들었던 것이다. 방송사 보도는 인터넷보다도 한참 늦었다. 한 순간에 수많은 생명이 왔다갔다하는 큰 지진이 난 상황이었다면 어떠했을까 생각하면 아찔하다. 한반도에도 강진이 닥칠지 모른다는 학자들의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지진이 났을 때 주민이 행동 요령을 아느냐 모르느냐도 피해 규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평창 지진을 계기로 많은 주변 사람에게 물어본 결과, 그런 행동요령을 배우거나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배울 기회도 없었고, 일부러 배우려고도 하지 않은 탓이다. 각종 건축물이나 국가 기간시설의 내진 설계 강도도 선진국에 비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제법 센 강진이 발생하면 통신망과 전력망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강진의 피해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크다. 지진에 안이하게 대처해온 나라는 더 큰 어려움을 당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에는 너무 큰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게 지진이다. 하루빨리 지진 대비책이 시행되길 기대한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