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에디터칼럼

분열의 덫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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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분열의 유전자는 그간의 대선을 보면 명백하게 드러난다. 우선 초기에는 공개적이었다. 누가 봐도 분명한 외상(外傷)이 드러났다. 대통령 직선제가 부활한 1987년의 13대 대선은 노태우 군정세력 대 김영삼(YS).김대중(DJ) 민주화 세력 간의 대결이었다. 많은 국민의 우려와 만류에도 불구하고 YS와 DJ는 각각 출마를 강행해 패했다. 정치불신은 그 상처의 후유증이다.

14대 대선은 본격적인 지역대결 구도다. 영남을 중심으로 한 동군(東軍)은 후보가 난립했다. 경남 출신의 YS 외에 강원 출신의 정주영과 부산 출신의 박찬종이 각각 출마했다. 하지만 YS는 충청의 맹주 김종필과 제휴했다. 그 결과 큰 분열은 호남과 충청으로 구성되는 서군(西軍)에서 벌어졌다. 서군은 반 토막이 났다. 크게 분열한 서군은 작게 분열한 동군에게 졌다.

분열은 진화한다. 당연히 보다 복잡한 구조로 변한다.

15대 대선에선 제3후보 이인제가 승패를 갈랐다. 서군 대표는 국민회의 DJ, 동군 대표는 한나라당 이회창이었다. 당초 한나라당 소속이면서 충남 출신이란 점에서 이인제는 중간지대의 후보였다. 한나라당을 탈당한 이인제는 영남에서만 178만여 표를 쓸어담았다. 반면 이인제의 충청권 득표는 65만여 표. 이인제의 출마로 인한 분열의 타격은 서군보다는 동군에게 컸다. 이회창은 DJ에게 39만여 표 차이로 고배를 마셨다. 경선 불복이 겹쳐 상흔도 깊었다.

16대 대선은 양자대결이다. 구도가 단순해 보였다. 하지만 여기에도 분열은 있었다. 민주당 후보 노무현은 경남 출신임을 내세워 동군 표를 잠식했다. 한나라당의 이회창은 충남의 선영을 강조해 서군 쪼개기에 나섰다. 뚜껑을 연 결과 노무현이 영남에서 얻은 표는 175만여 표. 이회창은 충청에서 95만여 표를 얻었다. 결과는 노무현의 57만여 표 차 승리다.

분열은 점점 영악해지고 교묘해졌다.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안으로 숨어들었다. 그러나 그 내상(內傷)은 보다 치명적으로 진화해 갔다.

어쩌면 분열은 필연일지도 모른다. 한국 정당사는 분열의 역사다. 조선 왕조의 당쟁 역시 마찬가지다. 동식물이 온몸으로 체세포 분열을 하는 것처럼 정당이나 정파는 분열한다. 다만 그 분열은 생식과 성장이 목표가 아니라 종양화하며 자기 파괴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자연생태계의 분열과 다르다. 특히 분열의 법칙은 강자에게 예외를 찾기 힘들 정도로 적용된다. 그 이면에서 약자는 통합으로 역전을 준비한다. 강자는 약자가 되고, 약자는 강자가 되는 순환이 꼬리를 문다. 통합은 분열로, 분열은 통합으로 이어진다.

그러면 연말의 대선에서는 누가 분열의 함정에 빠질 것인가. 과연 누가 분열의 숙명을 떠안은 강자인가. 정권을 쥔 여권을 강자라 할 수 있는가. 1여4야의 5당체제는 외견상으론 야권의 분열을, 내용 면에서는 여권의 분열을 보여 준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당.민주노동당.국민중심당은 겹치는 지역기반, 중복되는 이념성향의 표밭에서 백병전을 벌이고 있다.

한나라당은 어떤가. 연이은 대선 패배로 분열을 경계하는 목소리는 크다. 하지만 예비후보 3명이 지지도 상위를 싹쓸이하는 지금 상황은 한나라당이 구심적 통합보다 원심적 분화의 길로 내달을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결국 어느 쪽도 분열의 덫에서 자유롭지 않다. 분열의 코드로 보는 대선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11개월의 여정(旅程)에서 분열은 언제, 어떤 모습으로 숨겨 왔던 얼굴을 드러낼 것인가.

김교준 정치부문 에디터